희귀병인 '윌슨병'을 앓고 있는 민수는 하루종일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온몸의 신경이 마비돼 움짝달싹 못하지만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손을 이용해 휴대폰을 벗삼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 사용 대상은 어머니가 유일하며, 그나마 문자메시지에 한정돼 있다. 혀마저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주로 거실에서 민수가 보낸 문자를 받는다. 17평짜리 아파트이기에 문자를 주고받는 거리가 3~4m에 불과하다. 민수의 침대에는 어머니를 호출할 수 있는 종이 있음에도 굳이 휴대폰을 사용한다.

민수가 드러누운 뒤 처음에는 대학친구 등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많았다. 여자친구는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이들의 전화나 방문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문자메시지마저 끊긴 지 오래다. 그런데도 민수는 여전히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자신을 잊어버린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윌슨병은 음식 성분에 담긴 구리가 배출되지 않고 간·뇌 등에 축적돼 생기는 것으로, 5년 내 사망율이 80~90%에 달해 암보다 무서운 병이지만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인천 연수동에 사는 박모(여)씨는 TV를 보다가 나무나 숲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고 한다. 둘째 아이(5)가 앓고 있는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증'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 병은 신경이 마치 식물처럼 급속히 자라 종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힘들다. 약도 치료법도 없어 오직 수술을 통해 신경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데 보통 9~10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인 데다, 수개월 후면 신경이 다시 자라나 수술을 반복해야 한다. 박씨는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어 이같이 무서운 천형을 안겨줬는지 신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진스(Global Genes)는 세계적으로 3000만명 가량이 미국에서 '희귀질환'으로 정의한 7000여 종의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추정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12월 희귀질환관리법이 시행된 이후 희귀병 종류가 2018년 11월 926개, 2019년 11월 1014개에 달한다고 보건복지부가 발표했다. 희귀병을 앓는 사람 수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쉽게 말해 정확한 실태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계문명이 가속화되면서 전문의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거나 오진률이 높은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거나 생을 마감하고 있다.

새해에는 희귀병 환자들에게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정부 또한 희귀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료기관을 양성하는 등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