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해운 환경은 어느 도시보다 인천에게 중대한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해운정책을 마련해야겠지만 미래 해운산업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1995년 어느 봄날, 대학원 선배의 손에 이끌려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해운산업연구원(KMI)에서 일하게 됐다. 20년 남짓 축적된 항만물동량 데이터를 사용해 2020년까지 전국 항만의 화물량을 예측하는 것이 연구팀에게 처음 주어진 숙제였다. 당시에는 과연 2020년이 올 것인지조차 가물가물하게 여겨졌었는데 어느새 2020년에 당도하였으니 참으로 시간은 정직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해운, 항만, 물류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지만 가슴 아픈 사건들도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진해운의 파산이다. 2000년대 세계 4위의 지위까지 올랐던 한진해운은 2017년 단기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정부는 60년 이상의 세월이 키워낸 국적 선사를 하루아침에 쉽게 지워버렸다. 당시 해운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금융관료들은 해운을 사양 산업인양 취급했다. 국민들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해운은 사양 산업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덴마크 국적의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를 비롯해 세계 5위 내 선사 중 4개가 유럽 선사들이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경제대국들은 세계적인 국적 선사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와중에도 다른 선진국들은 자국의 선사를 지원하고 통합하면서 더 크고 스마트한 선사로 키워내고 있다. 해운이 사양 사업이라면 선진국들이 자국의 해운을 이처럼 애지중지 키울 이유가 있겠는가.

또한 해운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던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와 같은 중후장대 산업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부문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서비스 부문에는 취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서비스업은 해운 말고는 마땅치 않다. 2018년 우리나라 전체 국제수지 중 서비스 부문의 수입은 991억달러였는데 이 중 해운부문은 198억달러로서 서비스 전체 외화 가득액의 20%를 차지했다. 해운경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2008년의 해운부문 외화 가득액은 377억달러로서 서비스 전체의 42%를 차지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우리 해운산업이 항해해야 할 바다는 낯설고 파고 또한 높다.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해운에 대한 환경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해운으로 인한 해양 및 대기오염과 이산화탄소의 감축을 위한 강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해운기업들은 상당한 재무적 압박을 받고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은 자국 연안 해운에 대한 카보타지(cabotage)를 3년 내에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부산에 입지한 글로벌 선사들의 환적 기지를 중국으로 이동시키는 효과와 함께 중국 항만 중심의 정기선항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중국정부는 한·중항로 항권의 점진적 해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현실화될 경우 한·중·일 항로에서의 새로운 경쟁체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한편, 4차산업혁명 기술의 해운산업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머스크는 블록체인 기반의 트레이드렌즈(Tradelens)의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네트워크에 가입한 선사들은 세계 해상 컨테이너의 70%를 취급하고 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선도하는 자율운항선박기술 역시 본 궤도에 오른 지 오래다. 국제해사기구는 자율운행선박의 출현에 대비한 규칙들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해운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며, '미래 산업'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산업이다. 2020년 이후 변화하는 해운 환경은 어느 도시보다 인천에게 중대한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해운정책을 마련해야겠지만 미래 해운산업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상윤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