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저물어간다. 다사다난했다. 가던 길 멈칫거리며 선 자리에서 제각각 목소리를 높인 한해였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진보와 보수가 각자의 논리로 무장한 채 시류를 압도했다. 통합을 위한 자리는 여전히 협소했다. 서로 다른 촛불이 점화됐다. 분란이 일어난 자리에선 끝이 없는 싸움판이 연출됐다. 특히 정치적으로 우리는 퇴행을 거듭했다. 국회는 끝내 볼썽사나운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는 본연의 지도력을 상실한 채 정치마당에 올라타 분열을 재촉했다.

비교적 살만했을 중산층의 욕망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차를 좁혀가며 강도를 높여야 했다. 장애인 시설과 보육원, 정신보건센터, 임대아파트가 인근에 들어서는 걸 막겠다며 악을 써대던 중산층의 몰염치와 파렴치가 안양과 성남, 수원 등 우리 지역에서도 여전히 강도의 얼굴을 바꾸지 못했다. 그렇게도 강조했던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 충분히 감당했어야 할 노동현장에서 안타깝게 죽어 나간 노동자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과 다른 내일, 올해와 다른 새해, 어제와 다른 삶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오늘을 기억하자. 야만스러웠던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결코 잊어서도, 잊혀져서도 안 되는 우리들의 현재다.

다행히 우리는 또 해를 바꾼다. 인간에게 시간에 대한 공포는 영원했을 것이다. 따라서 해를 바꾸는 습관은 인류가 대면한 공포를 넘어서기 위해 고안한 지혜요, 역량이었을 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현재와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난해하고 여전히 험상궂지만 그 가운데 배시시 순진한 모습 드러냈던 가능성의 얼굴을 찾아 나서자. 사나웠던 시대의 광기를 제압할 수 없었지만 시민사회는 선 자리에서 묵묵히 몸집을 키웠다. 마을이, 공동체가 성장하고 나눔과 연대가 좁은 틈을 비집고 자리를 확보했다. 분권과 자치를 확대했다. 분권은 취약계층의 복지를 확대하고,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던 이런저런 실험들을 거치며 근력을 키워왔다. 새날의 기약, 시민의 역량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꿈을 새롭게 설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