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현대미술 화단에 날카로운 일침

 

▲ 김성배 작가가 1980년대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 활동 당시 작업했던 '안에서 밖으로_바늘 천' 작품을 재현한 작품이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경기도미술관에 전시 중인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 아카이빙 자료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김성배 작가가 1980년대 당시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70년대 '아방가르드협회'에서 영감
수원지역 작가들 모여 1981년 결성
제3회 전시회로 '미학적 전기' 마련
군포·대학로서 '융합' 초점 둔 작업


한국미술 화단에 반기를 들며 혜성같이 등장한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면서 파격적인 이들 집단은 존재만으로 과거의 미술을 깡그리 부정해 버렸다. 바늘, 고추장, 미역, 김,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한 톨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탁구대 위에 수천개의 바늘을 꽂거나 손에 먼지를 묻혀 거울에 바르기도 한다. 난해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들의 예술은 무엇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시점·시점_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
▶기간 : 2019년 10월29일~2020년 2월2일
▶장소 : 경기도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화랑유원지 내)

안드로메다(수리)미술연구소는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는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가 주도하던 한국 미술 화단에 반기를 들며 조형적 대안을 제시했던 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의 실험적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등장했다. 급변하는 정치, 사회적 현실 속에서 새로운 미술이 싹트고 있는 가운데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던 김성배는 이러한 미술 흐름을 인식했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수원의 작가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1981년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가 만들어졌다. 1982년 1월 목우 화실에서 제1차 세미나(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광야의 성 제롬'에 대한 토론)를 가졌고, 3월에는 제2차 세미나(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한 토론)를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에서 진행했다. 이후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는 '제1회 습작전', '제2회 습작전'을 연이어 개최하며 다양한 활동의 성격을 드러냈다. 1983년 1월 개최한 '제3회 안드로메다전'을 통해 본격적인 안드로메다 미학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군포시 산본동으로 이전한 안드로메다는 '수리미술연구소'를 개설하고, 수리미술연구소 시대를 열었다, '쌀.보리.콩 전', '맨벽-토', '융합21C'와 같은 전시들도 이때 기획됐다. 뒤이어 대학로에 소나무갤러리를 열고 이들은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지속해서 이어나갔다.

연대기
▶창립년도 1981년
▶창립멤버 김성배

▶1982.1.31. 제1차 세미나(레오나르도다빈치 작품 '광야의 성 제롬'에 대한 토론)_목우화실
▶1982.3.27. 제2차 세미나(레오나르도다빈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한 토론)_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
▶1982.3.27. 제1회 습작전(강기표, 김석환, 김성배, 김진로, 문석배, 백종관, 오성만, 이상원, 장지성, 황민수)_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
▶1983.1 제3회 안드로메다전(김성배, 김진로, 문석배, 이상원, 이석기, 장지성, 정우건)
▶1989.(추정) 수리미술연구소 개소(군포시 산본동 259-6)
▶1989.9. 쌀·보리·콩 전(김성배, 김진로, 명혜경, 이윤숙)_수리미술연구소
▶1990. 소나무 갤러리 오픈(종로구 동숭동 1번지)
▶1990.5. 호랑이에서 돼지까지 전(소나무 갤러리 개관전)


[시대 고발자 안드로메다(수리)미술연구소 김성배] "과거 시스템 부정하고 생활 속 소재로 작품 활동"
"등산을 하며 서구 중심적 예술관을 떠나 동양적 사상을 찾고 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히말라야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상징이 되고, 예술과 삶의 정점을 향한 끝없는 갈망의 대상이 되지요."

22일 만난 김성배 작가는 등반가이면서 작품으로 삶의 결과물을 토해내는 작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세상의 어떤 직업군 안에 가두어 김 작가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유'라는 단어를 의인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김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느 덧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며 백발이 성성해진 그는 여전히 백두대간이며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다. 얼핏 산을 지독히도 좋아하는 여느 등반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는 작품 활동의 일환이다.

"우주의 근본이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던 저의 작품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며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질서와 조화 등의 영감을 얻습니다. 등정은 곧 정체성을 구성하고 거대한 자연과 우주 가장 가까이 닿기를 염원하던 저의 뜻을 충족시키며 작업물을 완성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지요."

이 같은 김 작가의 독특한 실험정신이나 도전정신은 80년대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를 결성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을 하던 젊은 작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는 조용히 주위를 배회하며 파격을 불러왔다. 이들은 당시 정권 체제를 비판하며 보다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예술로 저항을 표현했던 80년대 소집단들의 방식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들이 기존의 서구 중심적인 모더니즘 예술에 반기를 들며 저항 의지를 표출했다는 점은 80년대 여타 미술소집단들과 같다.

"이번 시점시점 전시를 앞두고 고민이 들었죠. 80년대 정권 체제를 비판하던 미술 소집단들과 안드로메다가 가진 성격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지난 과거의 시스템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이번 전시회에 참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80년에 조직된 '안드로메다'는 김 작가가 당시 서울에 쏠려있던 문화 인프라를 수원지역으로 가져와 청년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한 미술 소집단이다. 이들 조직은 자연과 생명, 우주에 대한 동양적 감성들을 직관적으로 풀어낸 작품 활동들을 해 왔다. 특히 실험성과 비제도적인 형태로 좁은 생활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거나 주변에서 구해진 사물들이나 매체들을 거침없이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 대개 소나무, 소금, 미역, 김, 곡식의 분말, 바늘, 연탄, 고추장 등이 쓰였다.

"탁구대 위에 1000개의 바늘이 꽂힌 작품 '안에서 밖으로-바늘 천'에도 바늘이라는 일상적인 소재가 등장합니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였죠. 이외에도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작품의 오브제로 등장시켰습니다. 김이나 고추장 같은 음식의 재료도 작품에 쓰였죠. 작품의 재료나 소재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하나의 유행처럼 등장한 '대안공간'을 일찍이 운영했던 것이 김 작가였다. 안드로메다는 서울 중심적인 예술 활동이 주류를 이루던 80년대의 대안적 활동과 기존의 정체된 예술의 해소를 지원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그러나 김 작가는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현 시대의 대안공간들이 획일화되는 미술 흐름에 '대안'을 제시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그는 치열하고 고달프게 달려온 삶의 여정을 조금씩 조금씩 정리해 가고 있다.

"돌이켜보니 벌써 50년이나 작품 활동을 해 왔더군요. 이제는 온전히 저만의 작업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고 있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