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12개월 동안 오키나와 전선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에게 행한 감금, 학대, 살육의 현장과 한(恨)을 일기와 3·4조의 시 형식으로 쓴 장윤만(1917-1963) 선생의 수기가 책으로 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수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중략) "너희들은 총알도 아깝다"하면서
죽지 않는 우리 동포들에게 "속히 묻어라" 하니
우리 동포 하는 말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묻어라 하니
불쌍하다 불쌍하다. 우리 동포 불쌍하다.(태평양전쟁실기집. 70쪽)

다시 소리쳐 벗님을 찾아보니
썩어가는 그대 몸이 대답할 리 만무로다.
현해에서 하던 언약 어디 두고 혼자가나('만화사우곡' 중에서. 태평양전쟁실기집. 77쪽)

수기를 읽으면서 분노가 치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난 16일 출간한 <태평양전쟁실기집(太平洋戰爭實記集)>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은 '죽음의 섬' 일본 오키나와에 강제징용 된 후, 12개월 동안 쓴 수기집이다, 수기집의 주인공은 경북 상주의 장윤만 선생이다. 그는 함께 끌려와 일본군에 살해되거나 미군폭격, 굶주림 등으로 죽은 조선인들의 피를 토하는 한을 두루마리에 몰래 기록해 귀국했다.

수기 속에는 "우리 청년 총알 메고 왜졸의 뒤를 따라 가니, 총에 맞아 죽는 사람, 폭발 터져 죽는 사람 …" "몹쓸 놈의 왜졸놈아 밤낮주야 일을 시키고 일이 없어 굴속에 감금하고 물도 안주니 목을 매 죽는 사람도 있더라" "이 고생 이 고통을 부모형제 들으면 뼈가 녹고 마음이 쓰리리" "하루는 출석을 부르는데 한 사람이 답이 없어 툭 쳐보니 배고파 굶어 죽어 있다" 등의 장면이 기록돼 있다.

장윤만 선생
장윤만 선생

장윤만 선생이 강제징용된 건 1944년 6월10일. 공성면사무소와 군청에서는 "가까운 지역인 대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구와 부산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 본섬 서쪽 게라마제도의 아카시마(阿嘉島)와 자마미지마(座間味島) 섬으로 끌려갔다. 특설수상근무부대 제103중대 군부(인부)로 배속됐다. 자살특공정(배)을 위한 굴 파기, 진지 구축, 탄약·식량·어뢰정·폭뢰 등의 운반과 설치는 물론이고, 미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목숨을 건 작업을 강요당했다. 게다가 일제는 '식량을 훔쳤다',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조선인들을 무참히 공개 학살하기도 했다.

장 선생은 오키나와 서부의 자마미지마 섬에서 미군에 포로가 된 1945년 6월8일까지 12개월 동안 겪은 일과 조선인 동료들의 심정을 기록했다. 그는 1945년 9월20일 오키나와섬의 제1포로수용소로 압송됐고, 1946년 11월20일에야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그는 징용에서 얻은 병으로 수 년 간 병석에만 누워 있다가 1963년 작고했다.

그는 병석에서 친동생인 장재달(당시 중학생)씨에게 자신이 적어온 수기를 정서하도록 했고, 1948년 2월4일 실기를 완성했다. 책의 제목은 <대동아전쟁 실기집>, 부제로는 '왜정시대 징용거귀 고생기(倭政時代 徵用去歸 苦生記)'라고 첫장에 썼다.
 

태평양전쟁 실기집 원본 첫장
태평양전쟁 실기집 원본 첫장
태평양전쟁 실기집 원본
태평양전쟁 실기집 원본 /사진제공=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장윤만 선생의 미군포로 수용기록/사진제공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장윤만 선생의 미군포로 수용기록/사진제공=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 실기집은 70여년간 장롱 속에 보관만 되고 있던 중, 국립민속박물관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처음 알려졌다. 장 선생의 딸인 장현자(1974년 반도상사 노조지부장)씨와 사위 김준식씨에 의해 2019년에 일부만 현대문체로 옮겨졌다. 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김용덕)은 감수와 해설을 붙여 마침내 귀한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 책을 감수한 반병률 교수(한국외대 사학과)는 "이 수기집은 강제징용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매우 희귀한 자료"라며 "일본군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자행했던 야만적인 대우와 만행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반 교수는 "특히 수기의 끝부분 '만화사우곡'은 오키나와에서 죽은 동료에게 쓴 글의 형식을 빌어, 떠나온 고국산천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심정을 형상화한 점에서 특별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신호 정치2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