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단 노동자,메이드 인 코리아·민주화 이끈 주역
▲ 지난 2017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실시한 '인천 공단과 노동자의 생활문화' 학술조사를 주도한 안정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인천항 배경 현대 산업화 견인
일자리 찾아 모이던 기회의 땅
당시 노동자 22명 삶 기획전시

수도 관문·근현대사 압축 도시
건축물 철거 대신 유지·보수를


1883년 개항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의 문을 연 인천은 이후 우리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수탈기지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의 정착지로, 산업화 과정에서는 수출기지로 역할했고 민주화과정에서는 주안공단 노동자들의 5·3민주항쟁이 전국적인 6·10민주항쟁을 촉발했다.

'2019 인천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이처럼 굴곡진 인천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별한 행사가 지난 5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메이드(Made) 인(人) 인천'을 주제로 열렸다.

8월까지 이어진 이번 특별전은 ▲인천을 말하다, '전문가 특강' ▲음악과 함께 하는 인천공단 노동자 이야기, '갤러리 토크'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전시 이야기, '전시 해설' 등으로 구성돼 인천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온 인천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별전 외에도 국립민속박물관과 인천출신 연구자들이 참여해 도시민속(인천공단 노동자들의 생활문화), 어촌민속(조기의 섬에서 꽃게의 섬으로, 연평도), 농촌민속(70년 만에 다시 기록한 강화 선두포 마을지) 등의 현지조사와 자료수집을 거쳐 모두 12권의 민속지를 발간했다.

특별전에 이어 지난 10월부터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꽃' 특별전이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 인천 공단과 노동자의 삶에 주목

"민속하면 의례히 호미·지게 같은 과거의 농기구를 떠올리지만, 민속은 이미 정지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고, 사람을 사귀고, 노동하고, 모임을 가지고, 놀고, 잔치를 벌이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민속이고, 그래서 민속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습니다."

'2019 인천민속문화의 해'를 기획하고 진행한 안정윤(47)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인천 민속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원론적인 고민을 하면서 인천의 성장 동인을 찾았고, 그래서 인천에 영향을 미쳤던 공간과 사람에 집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별전은 그 중에서도 인천의 공단과 노동자에 주목했다.

그는 "인천은 인천항을 배경으로 명실상부한 현대 산업화 과정을 이끈 도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공단이 있었다.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공장지대와 4공단, 5공단, 6공단이 있는 인천은 가난을 면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따라서 인천에 사람이 모이게 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공단이었고 공단을 움직이는 힘은 노동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단과 공장노동자에 대한 학술조사와 전시는 부족했고 그 중요성에 비해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인천 공단 노동자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다. 그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노동자, 개인의 삶에 집중하게 됐다. 산업역군,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로서의 삶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 인천 노동자 22명의 삶을 담은 특별전

"2017년 코리아스파이서공업의 박남수 선생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부평역 광장에 갔습니다. 박 선생님은 당시 인천시민합창단으로 참여했고, 세월호 유족으로 구성된 4·16합창단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합창단의 노래에 맞춰 부평역 광장에 모인 인천시민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떼창하던 모습은 저에게 전율을 주었습니다. 이 감동의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 힘의 실체를 어렴픗하게 접하게 됐습니다.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특별전 개막식의 기념공연에도 이 노래를 담았습니다."

안정윤 학예연구사는 2017년부터 30명이 넘는 인천의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결국 22명 노동자의 삶을 전시에 담았다.

동일방직에서 일했던 이총각 선생님은 전시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많이 다독여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주역이자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히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끈 인천공단 노동자들의 삶은 저에게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줬다"며 "성효숙 작가의 설치미술 작업은 민주노총 인천본부와의 협업으로 현장과 연대를 이루면서 22명의 노동자를 넘어서는 전시로 확장됐다"고 말했다.
 


# 노동자의 도시 인천

"인천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변화의 마중물과도 같이 무엇이든 힘겹게 처음 시작하는 공간입니다. 인천은 시대적 고난을 정면에서 극복해 온 역동적인 '노동자 도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안정윤 학예연구사는 인천을 '노동자의 도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을 주제로 구현된 '에코 뮤지엄'의 적지로 제시했다.

그는 "인천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곳이며 그 압축판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과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며 "일제강점기부터 근대노동의 가치가 숨 쉬고 있는 정미소와 양조장 건물, 동일방직 보건실·교육실·기숙사, 이천전기 본관, 캠프마켓 내의 조병창 등 의미있는 흔적과 공간이 정말 많다. 어떤 도시보다도 그 건물 안에 노동의 가치와 역사, 사람의 이야기가 충분히 녹아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가 아닌, 수도의 관문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재해석해서 대한민국을 문화·사회·정치적인 면에서 주도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쉬운 것은 현재, 그 흔적들이 철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대로 유지·보수만 해도 문화자원이 되어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에코뮤지엄이 허물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상우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n

 

 


 

국립민속박물관과 안정윤은

 

 

국립민속박물관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생활문화 박물관이다. 한국인의 하루, 일 년, 평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상설전시와 특별한 주제의 기획전시가 함께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진행하는 '지역문화의 해' 사업은 지난 2006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2014년 경기도까지 9개 도(道)를 대상으로 1차 사업이 마무리됐고, 2015년에는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사 후 10년의 기록'이라는 세종특별자치시 대상 사업을 실시했다.

2016년부터는 광역시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울산시에 이어 2017년부터 인천 민속문화의 해 사업을 진행했다.

200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게 된 안정윤 학예연구사는 평범한 사람 이야기에 대한 매력을 떨칠 수 없어서 2008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초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를 필두로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주강현) 등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붐을 이룰 때, 그때 가졌던 '민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민속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2013년(경남)과 2014년(강원)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아쉬움 때문에 2015년에 실시한 세종시 현지조사에서는 세 아들을 데리고 현지 마을로 내려가 10개월을 함께 살면서 마을주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안정윤 학예연구사는 그 당시 마을주민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인천민속문화의 해' 사업을 진행하게 된 힘이 됐다고 한다.

/이상우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