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irony)'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말한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실 사이의 괴리, 또는 그런 표현을 이른다.

올해 가장 충격적인 영화, 그러면서도 가장 영화다운 영화로 <조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커>를 보는 내내 이 아이러니가 떠나질 않았다. '조커'라는 인물이, 충격적인 스토리텔링이, 기막힌 영상 모두가 아이러니였다. 새삼 영화가 아이러니임을 깨닫게 했다.
관객 동원은 차치하고라도 작품성만으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조커>는 아카데미 시상식 유력 후보로 성큼 다가섰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지난 9일 발표한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2020년 1월5일) 후보작에 영화 <조커>가 최우수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작곡상까지 총 4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것이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아 코믹스 영화사상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이미 수상하기도 했다.

원래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빌런(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괴짜나 악당)이다. 초록 머리에 귀까지 찢어진 새빨간 입으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다. 증오의 어릿광대, 광기의 화신 등으로 불리며 미국 DC코믹스의 대표적인 악당이자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으로 자리매김한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조커를 연기해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과연 그 아성을 넘어설 배우가 있겠는가 할 정도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2019년 <조커>는 희대의 악당 '조커의 탄생'이라는 그 누구도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로 코믹북이 아닌 영화를 위해 완전히 재창조된 독창적인 캐릭터의 탄생 서사를 다룬 작품이다.

어둡고 병든 도시 '고담시'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서 플랙. 성실하고 착하게 어릿광대를 하며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싶지만, 정작 아서의 현실은 모순이고 아이러니다. 어머니는 아서를 '해피'라 부르지만, 아서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거기다 아서는 발작적으로 터지는 웃음병증으로 인해 사람들의 무시와 모욕을 받기 일쑤다. 그로 인해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행복해서 나와야 하는 웃음인데, 그 웃음으로 인해 살인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광대 코미디언'으로 평생을 주목받지 못한 아서였지만, 고담시의 무능과 위선적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던 시민들은 '광대 살인자' 아서에 열광하며 거리로 뛰쳐나온다. 아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사회와 환경은 연민과 공감 결여, 빈부격차, 부유층의 무지와 위선 등으로 더욱 병들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아서는 '조커'가 되어간 것이다.

이렇듯 아이러니의 연속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조커이다. 더욱이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완벽 빙의돼 캐릭터에 혼연일체가 된 모습으로 절정의 연기를 펼쳤다. 캐릭터에 맞추려 하루에 사과 한 개로 버티며 무려 23㎏을 감량한 호아킨은 표정, 말투, 동작, 걸음걸이, 심지어 등뼈와 뱃가죽까지 완벽히 조커를 연기했다. 이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패러디들이 속출하면서 가히 '조커 신드롬'을 일으켰다.

영화의 엔딩에서 조커는 말한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결국 코미디였어." 기막힌 아이러니적 결말이다. 세상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는 아이러니다.

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