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화재를 재앙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자칫 인명 살상으로 이어지거나 인명피해는 없더라도 재산상의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에 방지하는 것보다 더 좋은 대책이란 게 있을 수는 없지만, 날로 늘어만 가는 게 또 화재다.

경기도 소방당국이 최근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3년간의 화재 건수와 원인을 조사했다. 총 8204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이 중 748건은 아예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분류됐다. 막상 수치로 보면 더 놀랍다. 화재 건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원인 미상의 화재 통계에 한 번 더 놀란다. 파주시 198건을 비롯해 남양주시, 양주시, 포천시 등에서 100여 건을 훌쩍 뛰어넘는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고양, 의정부, 연천, 가평, 동두천, 구리 등에서도 수십 여건씩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소방당국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처럼 원인을 모르는 화재다.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낸다는 게 생각처럼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화재가 났던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그로 인해 발화원인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것. 또 건물주나 세입자 등 화재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비협조도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방화 또는 실화 등으로 불이 났을 때 손해배상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더해 사법처리를 우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소방당국이 택한 방식은 전문가들을 투입하는 것 외에는 없다. 소방당국은 교수와 전문가 등 13명을 위촉해 현장합동감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 엑스레이를 탑재한 차량과 화재감정분석팀도 투입키로 했다고 한다. 소방당국의 애로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이미 지나가버린 화재현장에서 얼마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화재 원인을 밝혀야 다시 불이 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효과가 큰 것은 관계자들의 협조다. 이들의 애로를 거둬줌으로써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 그것부터 고민해 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