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레저활동 대체
대리운전·요식업 종사자들 '울상'
▲ 지난 11일 청라국제도시에서 만난 대리 기사 배모(61)씨. 대리 운전을 찾는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 지난 11일 부평역 주변 번화가 모습. 연말이면 직장인들로 붐볐던 거리엔 연인과 친구 단위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많던 직장인 송년회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연말 대목을 기대했는데 오늘도 손님 구경은 틀린 것 같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9시에 찾은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한 번화가. 저녁 시간을 맞아 음식점을 찾는 시민들로 거리가 붐빈 가운데 길가에 놓인 회색 승합차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대리운전'이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 대리기사 4명이 차 안에 모여 겨울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온풍기 앞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담소를 나누면서도 도통 휴대폰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15년 경력의 대리기사 배모(61)씨는 "직장인 회식이 끝나는 시간대에 맞춰 나왔지만 몇 시간째 연락 한 통 오지 않고 있다"며 "연말마다 대리운전을 찾는 직장인이 많았는데 요즘은 회식 문화가 사라져 수입이 반의 반으로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문화가 사회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직장인들의 송년회 문화가 변하고 있다. 여기에 52시간 근무제 도입까지 더해지면서 '점심 회식'과 '레저 활동' 등이 기존 회식을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같은 날 저녁에 찾은 부평역 주변 번화가 역시 연말임에도 송년회를 위해 모인 직장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연인과 친구 단위의 시민들이 주를 이뤘고 '단체석 보유'라는 문구가 적힌 고깃집 내부는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이성준(31)씨는 "회사에서 송년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직원들 반응이 좋지 않아 점심 회식으로 대체했다"며 "의무적인 송년회보단 마음 맞는 동료끼리 따로 모여 즐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김예진(29·여)씨도 "송년회 대신 볼링이나 다트를 하기로 했다"며 "일방적인 저녁 회식은 이제 사라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연말을 기대한 교통·음식업계 종사자들은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부평역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A씨는 "2~3년 전만 해도 직장인들의 송년회 예약 문의가 빗발쳤지만 요즘은 통 (예약) 전화가 없다"며 "단체석까지 마련했는데 손해가 크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계기로 회식에 대한 인식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종흠 인천대 소비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의 송년회 기피 문화는 일의 연장선이라는 심리가 크기 때문"이라며 "더는 회식이란 단어가 부정적 느낌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회식 문화를 조성하려는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 임태환·이아진 기자 imsen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