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 사철나무.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어느새 땅이 얼고 눈이 많이 온다는 대설(大雪)이 지나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계절이 오면 수도권에서는 소나무, 전나무와 같은 몇몇 바늘잎나무 외에는 푸르름이 사라져 버리고 진한 갈색의 풍경으로 채워진다. 그래도 길을 다니다 보면 학교와 공원 울타리 등에서 아직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사철나무를 만나게 된다.

사철나무(Euonymus japonicus)는 노박덩굴과의 늘푸른나무로 작은 계란형의 잎들이 줄기를 따라 마주나기 하고 있다. 잎을 만져보면 꽤나 두꺼워서 힘을 주고 구부려보면 부러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서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이다. 예로부터 동청목(冬靑木), 겨우살이나무라고도 하여 겨울철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식물이라는 의미를 다같이 공유했다. 키가 2~5m까지 자라는 나무라서 크게 자라면 밑동이 굵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날씬한 줄기가 땅위에서부터 여러 개가 솟아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하나의 나무에 밑동에서부터 여러 가지들이 촘촘하게 자라나서 예로부터 생울타리로 많이 사용하던 식물이다.

원래는 중부 이남 해안가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요즘은 가로수, 공원, 학교 등지에서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어져 있기에 굳이 해안가 자생지까지 가지 않아도 늘 푸르른 사철나무와 쉽게 만날 수 있다.

넓은 잎 늘푸른나무들은 대부분이 따뜻한 곳에서 자라지만, 사철나무는 이들 중에서는 드물게 추운 계절에 적응해 한반도 중부 북부까지도 자생하고 있다. 염분이나 강한 해풍에도 잘 견디고 추위도 잘 견디는 성질에 성장속도도 빠른 나무라 비교적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자란다.

햇볕이 부족한 음지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정말 초록 울타리로 활용하기 적합한 식물이다.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독도 사철나무는 강한 바닷바람과 열악한 토양 조건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독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사철나무의 꽃은 6~7월에 작고 연한 황록색 꽃들이 많이 달리는데, 꽃의 크기가 작아 얼핏 눈치도 못 채고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적게나마 향기와 꿀이 있어 다양한 꽃가루받이 곤충들이 찾아오는 식물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추운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사철나무의 진홍색 씨앗이다. 작은 구슬 모양의 옅은 황갈색 열매가 갈라져서 진홍색의 씨앗 3∼4개가 빠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가지에 눈이 내려 소복하게 쌓이고 하얀색과 초록색 그리고 주홍색의 점들이 어우러지는 울타리 풍경은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씨앗들은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한 새들에게는 소중한 먹거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어쩌면 씨앗을 몇 개 받아 심어보면 이듬해부터 새싹이 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의약에서는 사철나무의 껍질을 잘 말려서 이뇨제, 강장제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사철나무와 사촌지간인 한약재로 잘 쓰이는 두충나무의 대체용으로도 사용했다고도 전해진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을 지내며 이렇게 여러가지로 쓰임새가 많은 사철나무를 보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장정일 作)’ 이라는 시가 더욱 생각난다.

추운 바람에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버티어 살아가는 사철나무처럼 스스로가 그렇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

작은 어려움도 더욱 힘들어지는 이 추운 계절 만큼은 시인이 얘기하는 사철나무처럼 타인에게 그늘과 휴식은 못 주어도 우리 모두가 주변을 돌아보고 비록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래서 서로에게 따뜻한 날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