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경기남부취재본부 부장

 

한국 현대사에서 한신대학교는 전국 430여개 대학 중에서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상징적인 대학이다.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 항거해 교수와 학생들이 삭발한 사건이다.

한신대 교수를 역임한 고 문동환(1921~2019) 목사가 200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글을 보면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내렸다. 이에 맞서 한신대생들은 1973년 11월 동맹휴업에 들어가자, 이를 지지하며 당시 김정준 학장(당시 한신대는 단과대학-신학)을 비롯해 전체 교수들이 삭발했다. 학생들도 삭발에 동참해 대학이 마치 승가대학 모습을 연출했다. 그 유명한 한신대 삭발 사건이다.

당시 학생들은 나흘 동안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마지막 날 성만찬을 기념하는 예배에서 교수들은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겨준 것처럼 학생 발을 일일이 씻고 수건으로 닦아줬다. 그리고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껴안고 울었다.

그 얼마 뒤 김 학장은 채플실 강단 위에 세워져 있던 교기 앞에 무릎을 꿇더니 면도칼로 교기를 찢었다. 독재정권의 강요에 따라 용기 있는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제적을 시켜야 하는 교수의 무능함과 치욕스러운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찢긴 교기를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 한 땀 한 땀 다시 꿰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참교육 현장의 지표처럼 대학가에 전해 오고 있다.

46년 뒤 2019년 겨울. 10년 강산이 4번 변하고도 남은 세월 탓일까. 지금 한신대에서는 군부 독재 서슬이 시퍼런 시절에 보였던 한신 공동체의 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스승이 종이 서류에 서명까지 한 제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제 간 반목만 교정에 휑하니 남아 있을 뿐이다.

연규홍 총장은 2017년 11월 취임 당시 교수, 학생, 직원, 학교(대학본부) 등 4자가 협의해 중간 신임평가를 받기로 협약서까지 만들어가며 약속했다. 이후 연 총장은 학생대표가 선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간 신임평가를 차일피일 미뤘다. 지난 10월 학생들은 이에 항의해 본관 건물 점거 농성을 벌이자 학교측은 업무방해와 기물파손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 2명을 징계했다.

이에 반발해 지난달 11일 학생 10명과 교수 1명은 징계철회와 중간 신임평가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단식 18일만에 4자 협의회를 구성해 논의해 보자는 선에서 학교 측과 합의하고 농성을 풀었다. 한신대 동문과 교수, 교직원, 학생들은 단식농성을 지지하면서 "어쩌다가 한국 민주주의 성지 한신대가 이지경까지"라는 탄식을 쏟아냈다.

독재정권 강요에 학생을 지켜주지 못해 교기를 면도칼로 찢던 참스승(김정준 학장) 모습이 아니더라도 스승이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제자를 사지로 내몰아 징계하는 모습은 제3자가 봐도 참담하다.

지금이라도 연 총장은 학내분규의 결자해지 차원에서 자신이 서명까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누구 잘못을 탓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내린 징계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유신시절 교수와 학생들이 목놓아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한신 가족'이라고 부르던 노랫말처럼 옛 한신대 모습을 하루빨리 되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