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아무 나무나 보고 "선생 고맙소" 말한다. 겨울 아침. 겨울 아침 보고도 "선생 고맙소" 말한다. 빈 휴게소 지나간다. 오늘은 모두가 고맙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 두 마리. 작은 이발소에 서서 이발하는 아저씨, 고맙소. 다리는 절지만 거울 앞에 서서 이발하는 아저씨 보고도 인사해야지. 눈이 내리네. "선생 고맙소" 눈 보고 인사할 때 그래 고맙다 고마워. 산길 간다. 참새 한 마리. "고맙소."
▶겨울이 되고 첫 추위로 창문 밖이 온통 얼음이다. 시인은 돌아가시기 불과 한 달을 두고 이 시를 남기고 홀연히 돌아가셨다. 시린 겨울 아침. 책상머리에 앉아 이 시를 읽으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세상에는 온갖 협잡과 거짓말과 모략과 왜곡들이 넘쳐나서 견딜 수 없는 모욕감으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아파하고 그래서 억울해하고 그래서 가슴 속에 시퍼런 면도날 하나씩 품고 사는 일이 많다. 예수님이 아니라서 부처님이 아니라서 쉬 용서가 안 된다.
그러나 다 부질없음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겨울 나무에게 고맙고, 겨울 아침에게 고맙고, 내리는 눈에게도 고맙고, 협잡과 모략조차도 고마울 수 있는 삶이라면 가슴 깊숙이 쟁여두었던 눈물 한 바가지 길어 올려도 하냥 부끄럽지 않을 삶이지 않겠는가. 겨울 한밤중에도 뒤척이며 모로 누워서 잠들지 못하고,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이 나고, 시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고, 살아온 내 삶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주병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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