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라 조선은 '항해기'로 서양에 알려졌다

 

▲ 알세스트 호와 리라 호의 서해안 항해 경로를 표시한 원본 지도

 

▲ 바실 홀 여행기에서 헤이벨이 그린 소청도 주민들 삽화

 

영국 사절단 함장 '바실 홀'은
북경 방문길에 서해 둘러보며
자세한 위치·풍경 묘사는 물론
소청도 주민들 생활모습 담은
그림까지 삽입해 책 출간





고요하던 황해바다 위로 서양의 이양선이 찾아들었다.

영국 암허스트(Amherst) 사절단이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길에 이를 수행한 리라(Lyra) 호와 알세스트(Alceste) 호였다. 이들은 병자년이었던 1816년 2월19일 영국을 출항하여 목적지인 텐진항에 7월27일 도착했다. 암허스트 사절단은 영국 정부가 청나라와의 무역 개선을 꾀하기 위해 파견했다. 텐진에서 베이징 진입한 사절단이 중국 내륙 운하 길을 경유하여 다음해 1817년 1월1일 광저우에 도착할 때까지 약 5개월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이 기간을 이용해 조선 서해안과 류큐국을 탐사하고 사절단을 만나 영국으로 돌아갔다.

리라 호의 함장 바실 홀(B. Hall)은 1818년 본국에서 <조선의 서해안과 대류큐 섬 발견 항해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여 황해바다와 함께 하는 극동의 조선과 류큐의 실상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렸다. 본문과 부록 329쪽에 처음 접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구사하는 단어집을 84쪽에 걸쳐 수록한 이 책의 본문 가운데 앞부분 57쪽에 걸쳐 조선과 관련한 내용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9월1일) 오전 9시쯤 맨 꼭대기까지 나무숲으로 우거진, 높이 솟아있는 세 섬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 … ) 세 섬 중 제일 남쪽으로 돌아 내려가 맨 남쪽에 있는 섬에서 2, 3마일 떨어진 마파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바람도 막아주는, 아름다운 만에 닻을 내린 시간은 정오쯤이었다. 자오선 관찰로는 이 섬의 위치는 북위 37도 50분, 코르노미터로는 동경 124도 50분이었다."
- 바실 홀, <10일간의 조선항해기>, 김석중 역, 삶과꿈, 2000, 18쪽.

바실 홀이 목격한 세 개의 섬은 백령군도다. 백령군도 사람들이 서양인과 접촉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홀 일행의 백령군도 답사의 기착지는 세 섬의 제일 남쪽에 있는 소청도였다. 이들의 여행 경로가 서해안 일대의 해로측량에 목적이 있었기에 다음 항해를 염두에 두고 소청도에 상륙해 소청도 사람들은 만났다.

바실 홀 일행과 소청도 주민들의 만남은 황해바다에서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이 처음으로 낯설게 만났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바실 홀은 소청도 사람들과 마을의 풍경을 묘사하고 소청도 주민과 교섭해 그의 조선 사람의 모습을 삽화로 책에 넣기도 했다. 이 그림은 브라운(C. W. Brown)이 스케치한 것을 헤이벨(W. Havell)이 그린 그림으로 홀의 여행기에 수록돼 있다. 조선 사람의 모습을 서양인처럼 그려놓았는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리는 등 조선인들의 생활습관을 실감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소청도 사람들은 서양인과는 교섭을 전혀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홀은 기록하였다.

"우리는 소와 닭을 보았으나 그곳 사람들은 그것들을 우리들의 돈이나 어떠한 물건으로도 바뀌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선물로 건네준 달러 화폐도 받으려 하지 않았고 어떠한 물건을 보여도 소중하다고 여기는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유일한 예외는 와인 잔이었는데 그것조차 그들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중략) 이곳 사람들은, 태연자약과 무관심이 한데 섞인, 일종의 우쭐대는 몸가짐의 소유자들이었다."
- 바실 홀, <10일간의 조선항해기>, 김석중 역, 삶과꿈, 2000, 24~25쪽

홀 일행은 예수교 신부들이 만든 지도(Jesuit Map)를 들고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조선의 본토가 어디쯤인가를 조망하기도 하고, 섬 주변의 해도를 작성하면서 그날 밤 8시 닻을 올려 남동쪽으로 항해 출발했다. 출발하기 직전 알세스트(Alceste) 호의 머리 맥스웰(M. Maxwell) 함장은 세 개의 섬들을 영국 에든버러 학술원 총재이자 바실 홀의 부친인 제임스 홀의 이름을 따 'Sir. James Halls Group'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후 이 명칭은 개항기까지 황해를 찾아온 서양 기선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계속 사용됐다. 바실 홀의 여행기는 은둔의 나라 조선을 서양의 여러 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충남 마량진 앞바다서 전해받은국내 최초 성경 '킹 제임스 성경']


 

▲ 마량진 주민들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킹 제임스 성경
▲ 마량진 주민들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킹 제임스 성경

 

소청도를 떠난 바실 홀 일행은 황해바다 연안으로 바다를 측량하면서 내려가다가 1816년 9월4일 충청남도 서천군의 마량진 갈곶 밑에 상륙했다. 낯선 배가 육지에 상륙하자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 이끄는 조선 수군들이 두 배를 둘러싸고 조우했다.

바실 홀 일행은 그들과 교섭하면서 두 권의 책을 전해주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어로 된 킹 제임스 성경이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들의 여행을 최초의 성경 전파로 높이 평가해왔다. 충남 서천의 마량진(馬梁鎭) 포구는 최초의 성경 전례지를 알리는 성역화사업이 추진됐다. 2004년 기념공원이 조성된 데 이어됐다. 바실 홀 일행이 타고 온 배의 모형을 비롯하여 성경 번역의 역사 등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마량진 앞바다는 또한 1885년 인천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상륙했던 미국의 선교사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성경반포사업차 인천에서 서천으로 가던 도중 어청도 인근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하여 아펜젤러 순직기념관도 세워졌다.

한편, 1832년 7월, 바실 홀 일행이 남긴 지도를 보고 영국 상선 로드 에머스트(Rod Emerst) 호가 백령도 근해에 도착했다. 이 배에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인들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 귀츨라프(K. Gutzlaff)가 승선하고 있었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정식 통상이었지만, 개신교 복음 전파라는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프로이센 출신의 귀츨라프는 조선을 찾아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러나 귀츨라프 일행이 백령도에 상륙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들은 제임스 홀 군도의 북쪽에 상륙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황해도 장연의 몽금포 일대로 상륙했다.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와 1년간 선교활동을 전개했으나 발각돼 황해감영에서 불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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