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8·15 이후 해방공간 못지 않게 보수·진보가 대립하는 현실에서 요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짜 보수' 와 '가짜 진보'를 생각하게 된다.

 


원래 진짜보다는 가짜의 목소리가 크기 마련이어서 가짜군(群)이 첨예한 진영 갈등 구도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적인 이념 논쟁을 잠재우는 등 사회 건전성을 파괴하고 있지만, 개념을 선뜻 정의하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가짜 보수를 원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보수가 내세우는 핵심 가치, 즉 자유· 시장경제· 법질서 등에 반하는 사람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가짜 보수는 주로 부정부패와 관련된 뉘앙스를 풍겨 왔다. "보수는 '돈'과 '자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를 '좌파'나 '친북'으로 몰아가는 행태일 것이다. 오랜 기간 극우 세력이나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기에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툭하면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진정한 안보나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정당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짜 보수의 특성은 집요함과 폭력성이다. 가당치도 않은 논리를 스토커나 조폭과 같이 거칠고 반복적으로 펴기 일쑤여서 드러나지 않게 보수가치를 실현하는 진짜 보수를 욕되게 한다.

요즘에는 '가짜 진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개혁과 민주주의, 참신성을 자산 삼아 1990년대 이후 제도권 정치 전면에 등장했지만 어느새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사람들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종종 도마 위에 오르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진보의 대표적 이론가로 공정·정의를 입버릇처럼 말했다가 '불공정의 전형'으로 전락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떠올리면 현실감이 배가될 것이다.

독일의 헤겔은 "진보의 모순은 도덕적 당위가 현실성과 대립돼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것에 머무른다는 점"이라고 했다. 철학자의 말답게 어렵기는 하지만, 내세우는 기치와 실제 행위가 다른 것이 진보의 맹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표현이면 양반이다. 최근에는 '진보 양아치' 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진보'를 표방하며 재빨리 나서지만, 정당성과 합리성은 명분에 그치고 야수와 같이 이익단체 속성을 드러내는 집단을 가리킨다.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은 가짜 보수·진보"라고 말했다. 가짜 보수는 심각한 사회악이라는 판정을 이미 받았다. 이제는 가짜 진보세력이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