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우 경기동부취재본부 부장

낙엽이 떨어지고 추위가 시작되는 늦가을인 11월 중순이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준비가 시작된다. 특히 먹거리 월동준비인 김장. 김장은 자신만의 월동준비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월동준비 문화라서 그 의의가 크다.

그래서 김장은 2013년 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인 '김장문화'가 전 세계인이 함께 보호하고 전승하는 문화유산이 됐다.

특히 김장은 다른 문화권의 비슷한 채소 절임 문화와 달리 겨울이 다가오기 직전에 전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집중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저장해 두는 풍속이다. 단지 음식 장만뿐 아니라 공동체의 나눔이라는 상징적 정서가 특이하다.

세계인과 함께 영원히 보호하고 전승되어야만 하는 우리 문화인 김장.
매년 10월 말에서 11월까지 일선 지자체와 봉사단체들은 독거노인, 차상위계층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해 줄 김치를 대량으로 담가 전달식까지 갖는다.

마을회관과 읍사무소, 동사무소 등의 공터와 주차장에는 그 동네의 청년, 부녀자, 새마을 지도자, 이장 등 마을을 이끌어가는 봉사자들이 밭에서 뽑은 배추를 옮기고 소금에 절이고, 씻고, 양념을 며칠 동안 어렵게 만들어 김장준비를 해놓는다.

그리고 지차체 의원, 지자체 단체장, 정치후보자 등 지역 정치인들과 봉사단체의 단체장들이 플래카드를 걸어둔 밑에서 김치속을 넣기 시작한다. 이후 유명 단체장들이 김장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에서 카메라가 터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치는 깨끗한 박스에 잘 포장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전달되기 전의 김치는 정치인들과 단체장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이 시절에만 이같이 정치인과 단체들의 홍보(?) 행사같은 김장이 하루에서 수십여 차례 열린다.

이처럼 김장문화가 어느새부터인지 지역 정치인의 얼굴 알리기, 생색내기 봉사로 전락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가끔 연출되기도 해 개운하지 않다.
여기에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전달된 김치의 내용물이다. 지역마다 제조법이 다소 다르지만 김치는 대부분 잘 절인 배추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갓, 젓갈 등 각종 양념과 재료를 잘 섞은 속을 넣는 게 공통적이다.

"주는 거라서 그냥 받기는 했지만 제대로 절여져 있지도 않고, 고춧가루만 그냥 지나갔을 정도로 양념도 없는 저 김치를 어떻게 먹어야 될 지 모르겠다. 그냥 익을 때까지 …"

봉사단체에서 전달된 김치를 먹는다는 한 노인은 절여지지 않은 배추에 양념이 섞이지 않은 김치를 받아 곤란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제 김장문화가 정치의 장이나, 사회적 소위 계층에 대한 과시의 장 등에서 어려운 이웃의 입장에서 따뜻한 기쁨을 전달받을 수 있는 나눔의 장으로 발전해야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