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일보는 지난 29일자 1면에 큼지막한 사진기사를 실었다.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장애인식개선 음악회'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는 모습을 게재했다. 장애를 뛰어넘은 연주는 어둠 속에서 더 찬란한 하모니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장애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열린 공연에서 관객들은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단원들은 점자 악보로 곡을 통째로 외우고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연습한 실력을 무대에서 한껏 뽐냈다. 12회를 맞이하는 정기연주회였다.

단원들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훈맹정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글자다.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1888~1963)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은 이렇게 빛 잃은 이들에게 세상을 밝혀준다. 63개의 한글점자 훈맹정음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480년 후인 1926년 11월4일 3년의 비밀 연구 끝에 세상으로 나왔다. 드디어 시각장애인들도 손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한글의 원리를 바탕으로 창제된 훈맹정음은 '또 하나의 한글'이란 평가를 받는다. 일제 치하에서 핍박을 받던 한글을 생각할 때 훈맹정음 창안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송암은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시각장애인들에게 훈맹정음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한글점자인 셈이다. 인천 강화군에서 태어난 송암은 평생을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과 점자 반포에 힘썼다. 현재 미추홀구 학익동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송암 박두성 기념관'이 있다. 송암의 시각장애인 사랑은 그의 '어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눈이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두뇌가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니 맹인들을 방안에 가두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의 불구가 될 터, 한국말 점자가 있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인천시가 송도국제도시에서 지난 27일 착공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훈맹정음관(가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이 유치도시인 만큼 2022년 개관할 박물관에 한글점자와 관련한 콘텐츠를 상설로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는 2015년 문화관광부에 문자박물관 유치 신청서를 제출할 때 훈맹정음의 아버지인 송암을 배출한 도시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았는가. 그래서 훈맹정음관 설치는 마땅하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새로운 역사가치를 창출한 송암의 정신을 기리는 데에는 너나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