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집행위원장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며, 대결도 평화도 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 좌우된다. 북과 미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남과 북 사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심한 경우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불상사도 발생한다. 북과 미 사이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남북 간의 평화도 고조되어 정상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대화와 대결이 반복되던 북미 관계에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2017년 11월29일이다. 이날은 북이 화성 15호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날로서 북미 관계 역사에서 뚜렷한 변곡점이 됐다.

이날을 기점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과 김정은 위원장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일컬어 리틀 로켓맨 등으로 비하하는가 하면 북에 대해서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등의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는 김 위원장을 멋진 사람으로 추켜세우는가 하면 북에 대해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며 우호적인 자세로 돌변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친북 태도는 미국 내 일부 호전세력의 거센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선보인 이후 북은 군사적 대결에서 외교적 대결로 미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북의 지도자와 대화의 자리에 앉게 된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상회담 이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미국에 대하여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며 금년 말까지 지켜보겠다고 선언한 것은 북측이다. 북이 다른 길을 간다면 북미 관계는 또 다시 군대 결전으로 바뀔 수 있다. 북미 관계는 북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지금의 정세다.

중요한 것은 현정세가 불가역적이라는 점이다. 북미 관계는 과거와 달리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북은 시한을 정해 놓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길은 두 갈래다. 전쟁이냐 평화냐. 미국은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대결과 대화 사이에서 결말을 최대한 늦추려고 시도해 왔으나 이제는 차일피일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곤경에 처한 미국은 우리 남측에 대해서는 '동맹'의 이름으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중단하기로 결정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연장을 요구했으며, 주한미군 주둔비를 터무니없이 인상하려 한다. 한미동맹위기관리각서를 개정하여 미국의 위기 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무리한 시도까지 감행하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은 역시 두 갈래다. 전쟁이냐 평화냐. 관성에 이끌려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냐, 과감하게 민족의 편에 서서 평화를 쟁취할 것이냐. 북미 대결이 막바지에 치닫는 시점에서 적당히 타협할 지점은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15일 국회의원 47명이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일은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한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 또한 깊은 고뇌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민중은 또한 광장과 미국대사관 앞 등에서 각종 집회와 행진을 통하여 자주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해방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축전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앞두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임을 잊지 않을 때 지금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어느 쪽인가를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