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챔피언은 없다.」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스포츠의 냉엄한 공식이 적용돼 스타들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언제까지나 세계정상에 머무를것 같던 1인자가 속절없이 무너졌고 무명에 가까운 신출내기가 대스타로 떠오르는 파란이 잇따랐다.

 이변이 가장 많이 나왔던 종목은 배드민턴이었다.

 여자단식 최강 예자오잉(중국)은 8강에서 무명의 요네쿠라(일본)에게 발목이 잡혔고 96애틀랜타올림픽 2위 미아 아우디나(인도네시아)도 역시 8강에서 세계 20위 이주현(대교)에게 패했다.

 녹색 테이블에서는 단연 한국의 간판 김택수(프랑스퀑클럽)가 파란의 주인공이었다. 남자단체전에서 세계 1위 류구오량(중국)을 꺾었던 김택수는 상승세를 몰아 단식 준결승에서 세계 3위 공링후이(중국)를 누른 뒤 류구오량과의 재대결에서 또다시 승리, 86년 유남규 이후 12년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사격도 희비가 뚜렷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정미(인천남구청)는 92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자이자 한체대 1년 선배인 여갑순(청원군청)을 제치고 여자공기소총 우승을 차지했고 카이예칭(중국)은 여자권총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사격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10여년간 세계 남자권총을 주름잡았던 왕이푸(중국)는 단 한개의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유도의 정성숙(북제주군청) 등 수많은 스타들이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일부 노장들은 정상을 지켜내는 뚝심을 자랑했다. 남자역도 무제한급의 김태현(보성군청)과 육상 남자 1천5백m의 모하메드 술레이만(카타르)은 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태국의 복싱영웅 솜락 캄싱은 애틀랜타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제패했다.

 약물 복용으로 2년간 트랙에서 쫓겨났던 이진일(대구시청)이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남자 800m 2연패를 이룬 것도 특이할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