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춘분날 이다. 한해의 시작을 봄부터로 친다면 24절기의 입춘 우수 경칩 다음의 네번째에 해당하는 날이다. 그러니 이 봄도 퍽 깊어진 셈이다. 어느틈엔지 양지쪽 잔디가 파릇하고 정원의 목련도 모란도 새눈이 밤알 만큼이나 부풀었으며 공원길의 성급한 개나리 진달래도 입을 벌리고 있다. 먼 산그림자를 드리운 호숫가 수양버들도 완연하게 푸르다. 남회기선에서 북상한 태양이 적도위를 쬐느라 기온상승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춘분은 추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12시간씩 같다지만 이미 낮이 더 길어서 오늘 낮의 길이가 밤보다 9분이나 길다. 해가 진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있어 느껴지는 현상이다. 실제로 얼마전 까지만해도 아침해가 더디 뜨고 저녁에 일찍 어둡더니 아침 6시면 벌써 훤하고 저녁 6시가 지나도 해가 질 줄을 모른다.
 이때쯤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기여서 농촌에서는 농사일 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때를 두고 말하기를 “이월은 천하만민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고 했으며 “하루를 밭갈지 않으면 한해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하여 농사외의 일을 금했다. 다산의 `목민심서""에도 농사를 서둘도록 하기 위해 해마다 춘분날이면 여러 향촌에 통첩하여 제때에 농사할 것과 시기를 늦추었는지를 조사하여 상벌을 시행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봄내 가물어 진작부터 저마다 해갈을 걱정한다. 묘판을 설치해야 할터인데도 비소식이 없다. 더러 남쪽에는 뿌렸다지만 중부지방에는 비다운 비가 없는 채 일기예보로 감질만 낼뿐이다. 그러니 논밭은 타들어 가고 저수지 마다 벌겋게 추한 몰골을 드러낸다.
 천상 옛 가인의 시 한수로나 타는 가슴을 달래야 할까 보다.
 “흩날리고 흩날리는 춘분비가/마침내 머언 봉우리를 건너네/아침꽃은 마음으로 홀로 기뻐하고/햇새소리 조용하다/도롱이도 없이 이웃에 가다니/조금 젖어 물언덕에서 만났네/들사람들 무엇을 그리리오/시절이 밭농사 윤택케 해주는 일밖에” -영조조 시인 신광수의 `춘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