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얼마 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와 함께 제도권 정치를 떠나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각에서는 이른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용퇴론'이 부상하고 있다.

물론 그의 '제도권 정치' 은퇴 선언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의 행보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선거철이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젊은 피' 수혈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가오는 공천을 앞두고 '86그룹'의 정치적 선택에 더 많은 이목이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 개인의 선택이 '86그룹'이라는 한 세대 전체의 용퇴론으로 번지고 있는가. '86그룹'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제16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등장한 이후로 현재까지 20여 년 간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권 세력으로서 국정 운영을 주도하였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범야권의 중심으로서 제도권 정치 안에서 대정부 투쟁을 선도했다.

그들은 30대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제도권 정치 안에서 한동안 '젊음'과 '개혁',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상징해왔고, 이러한 이미지는 그들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지도 이미 20년이 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3선, 4선 국회의원이 되면서 어느덧 당내 '중진'으로 자리 잡았다. '86그룹'의 정치적 자산이었던 '젊음'과 '새로움'의 이미지는 점차 어색한 것이 되었고, 몇 해 전부터 그들 또한 이미 한국사회의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었다.

특히 얼마 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조국 사태'는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세대교체의 주체였던 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대교체는 '오래되고 늙은 세대'를 '새롭고 젊은 세대'로 교체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늘 '옳은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세대교체라는 것이 늘 옳은 것인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사정은 다를 수 있겠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는 한 세대가 짊어져왔던 시대적 과제의 효용성이 다했거나, 아니면 기존 세대에게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필요하고, 세대교체는 '옳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86그룹'이 감당해왔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아마도 '민주주의'와 '통일'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과제는 이제 시대적 효용성을 상실했는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통일'은 아닐 것이다. '86그룹'이 감당해온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아직은 그들이 집단으로서 물러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이후 세대가 통일에 대해서 그들만큼 적극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임종석 전 실장이 제도권 정치 은퇴 후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사회는 지난 20년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고, 그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과제들도 함께 등장하였다.

이전에는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였고, 이러한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대한 보다 민감한 감각과 민첩한 대응이 필요하다. '86그룹'만으로는 이러한 새로운 과제를 감당할 수 없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대적 감각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필요할 것이다.

요컨대 세대의 '교체'보다는 '확장'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적 감각을 지닌 세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집권 여당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