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용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에서 121명이 미주지역으로 첫 이민을 떠났다. 그들은 사탕수수농장에서 이름 대신 번호(bango tag)로 불리며, 새벽 5시에 기상해 10~14시간의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 노동의 대가로 월급 16달러를 받아 12달러가 생활비용으로 들어가고 4달러 정도 남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것을 모아서 성금을 내고 독립운동자금을 댔다.

그 고단한 삶이 엮어낸 감동의 파노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남 이승만 박사는 1918년 초·중등학교인 '한인기독학원'을 세워 운영하다가 광복이 되자 일반교육기관에 교육을 맡기고 1947년에 폐쇄했다.

그 부지를 판 대금을 하와이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쓰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바로 1954년 대한민국의 MIT를 만들겠다며 피와 땀이 밴 15만달러를 종잣돈으로 세운 인하대학이다. 이름도 인천과 하와이에서 따왔다. 이민자들의 염원과 가슴 아픈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름이 인하(仁荷)이다. 현재 인하대는 송도국제도시에 약 22만5000㎡의 부지를 계약하고 대금을 분할납부 중이다. 하지만 추후 교사 신축과 운영 등 재정난으로 송도캠퍼스 추진이 난항 중이다.

지식이 축적되고, 전수되고, 창조되는 대학은 경제자유구역의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 요소이다. 어려운 대학재정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 아니다. 송도의 첨단산업과 연구소, 인천대, 연세대, 인하대 등의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이 시너지를 높여 경제자유구역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하대에 주기로 되어 있는 약 5만㎡ 수익부지의 용도를 변경하여 대학유치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훌륭한 연구가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특혜시비를 걸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자유구역 발전을 위한 전략적 투자사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하대는 우리나라 조선, 항공, 기계 등의 분야에서 산업화를 이끈 우수 인재들을 양성해온 사학의 명문이다. 인천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인천시는 사립학교였던 인천대와 인천전문대를 동시에 인수해 시립화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단행한 바 있다. 그 이후 국립(법인)대로 전환하고 엄청난 재정지원을 해 오늘의 훌륭한 인천대를 만든 전례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특혜가 아니라 오히려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인하대 수익부지를 주상복합용지 등으로 과감하게 용도변경을 해주어 한국의 MIT를 만들겠다는 당초의 창학이념에 불을 지핌이 옳다. 용도변경 해 준다고 해서 경제청이 부담해야 하는 예산은 없다. 돈은 주상복합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내는 것이다.

지금도 경제자유구역청은 경제자유구역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경제자유구역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는 인센티브를 활용할 때다. 막무가내식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지역사회에서 먼저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중론을 형성해 결정권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하와이 이민자들의 숭고한 뜻에 보답하는 길이고 창학이념과 인천발전을 위한 인하역정(仁荷歷程)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