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한 줄 두 줄
당신은 젖어가는 사람

자유로운 오독을 선물해준
척박한 번역서를 대하듯

당신을 읽으면

나는 수긍을 잘하는 사람
당신은 설득을 잘하는 사람

이 싸움 없는 세계에서
한 줄 두 줄 뺨을 치는 빗줄기

혼자 깨어 크게 울던 밤이든
맨들로 찬비를 밀어내던 아침이든

당신이라는 글자에 압지를 덮으면
새겨지는

처음의 凶(흉)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근교에는 소금 광산이 있다. 그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물에 나뭇가지를 던지고 2-3개월이 지나면 눈부신 수정(crystal)으로 덮여서 처음의 가지 모습이 없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환상으로 가득했던 수정은 처음의 나뭇가지로 되돌아간다. 스탕달(Stendhal)은 이런 과정을 사랑에 빗대어서 결정화(cristalisation)와 탈결정화(decristalisation)라고 하였다.
이 시 속의 화자 역시 이런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당신'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읽는' 대상으로 여기면서일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읽는'다는 것은 이성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당신'은 '나'에게 오독을 선물해 준 사람, 그러니까 나에게 자유로운 발상을 낳게 하고, 자유로운 발상이 창조적 환상이 되게 한 사람이다. 그렇게 '당신'은 나를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놓았지만,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이들의 관계는 너무 평화로워서 비극적이다. 그의 설득에 항상 수긍하는 '나'에게 '당신'은 한 줄 두 줄 뺨을 치는 빗줄기가 되고, 어느새 젖어 들어가는 아픔이자 상처로 남는다. 그러나 더 비극적인 것은, "당신이라는 글자에 압지를 덮으면" 비로소 드러나는 "처음의 凶"처럼, 영원히 '나'에게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우는 순간 '나'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