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노동희망발전소 대표

동맹(同盟)이란 사전적 의미는 "두 나라 혹은 수 개국이 방위 또는 공격을 하기 위하여 조약에 따른 공동 행동을 맹약하는 국제 협정"이다. 한미동맹은 태생적으로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53년 한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체결에서 비롯된 까닭이다. 물론 당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한국에 미국의 경제적 지원도 있었다.

그러나 그 지원은 단순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냉전의 최전선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하여, 북(조선)에 대한 경제적 우위를 지켜냄으로써 체제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1991년 사회주의권 몰락과 2010년대 들어서 중국이 급부상한 이후 과거 냉전 시대 한데 묶여 있던 동북아 한·미·일 관계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자, 한국도 지소미아 연장 종료선언으로 대응한 것이 대표적이다. 숱한 대법원판결 중 하나에 불과한 '일제 강제징용노동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의미심장하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와 1965년 한일협정에 기초한 한·미·일 관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이제 동북아에서 신냉전의 첨병이 아닌, 평화의 균형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필요에 의해 체결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에 있어서 핵심적인 장치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정부 고위인사가 7명씩이나 방한해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 대한 존중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이 같은 행태는 미국 내에서도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60~70년대 한국이 아니다.

2018년 중국과의 교역 비중은 34.6%(홍콩과의 교역 7.6% 포함)로, 미국(11.7%)과 일본(5.0%)을 합한 16.7%의 두 배가 넘는다. 무역수지 측면에서는 중국과는 537억$, 홍콩과는 437억$ 흑자이고, 미국과는 135억$흑자, 일본과는 246억불 적자다. 한국이 먹고 살아가는데 있어 중국은 가장 유익한 이웃이다. 그런 중국을 적대시하고 고립화하는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동참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이미 문재인대통령은 중국에게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등의 3불 입장을 약속한 바가 있다. "경제는 중국과, 군사는 미국과 함께 하는 것이 일석이조"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만, 중국도 바보는 아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한 '선군'일 뿐만 아니라, 북방에서 떠오르는 신흥 강국 금나라와 몰락하는 명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쳤던 '현군'이란 평가다.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며 명나라만을 바라보다가 끝내 청나라 침입을 자초한 병자호란으로 '삼전도 굴욕'을 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동북아정세가 요동치는 올해, 8·15경축사에서 문재인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씀했지만, 지소미아 종료 마지막 날 "조건부 종료 유예"를 발표했다. 신냉전의 중심, 동북아에서 평화의 균형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동맹'에 대해 새로운 고민과 발상이 필요한 때다.

이성재 대표는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대우자동차 조립1부에 취업(위장)했으며, 19대 노조위원장(2004. 10-2006.9)을 지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천부평구협의회 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