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역세권 ○○역에서 5분거리'

뛰어서 5분인지, 걸어서 5분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애매한 이 문구.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분양에 주로 많이 쓰이는 문구다. 역 주변에 있어 이동이 편한 보금자리이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근처라 장사도 잘 된다는 의미다. 입지가 아주 좋은 곳이니 직접 사는 곳으로 혹은 투자처로 좋다는 것이다.

역세권이란 집 가치를 높여주는 그야말로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역세권 집이나 오피스텔 등이 여전히 비싼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지하철역 등과 가까운 집은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 번잡하다며 이를 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욕구도 함께 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세권'에서 '역'을 뺀 다양한 '세권'들이 등장하며 요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들어는 보았을 법한 '학세권' '몰세권' '공세권' '숲세권' 등 다양하다. '학세권'은 인근에 유치원, 초·중·고교 등 교육시설이 밀집한 교육환경이 좋은 주거지역이다. '몰세권'은 대형쇼핑몰이 가까운 지역, '공세권'은 공원을 끼고 있는 지역, '숲세권'은 숲이나 산 등 자연 친화적인 지역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공세권' '숲세권'등이다. 우리나라 전체를 뒤덮는 미세먼지 발생일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데다 지친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마당에 쇳가루가 날리는 주거지역 인천 사월마을은 충격이나 다름없다. 올해 6월 기준 총 52세대, 122명이 사는 사월마을은 제조업체 122곳, 도·소매 업체 17곳, 폐기물 처리업체 16곳 등 총 165개 공장이 운영 중이다. 주민 수 보다 더 많은 공장들이 주거지역을 뒤덮은 상황이다. 이걸 '공장세권' 혹은 '먼지세권'이라고 해야 할까. 친환경을 찾아 헤매는 요즘 분위기나 300만이 넘은 메가도시 인천과도 걸맞지 않다. 현장을 찾은 이들마다 아직도 인천에 이런 곳이 있느냐며 깜짝 놀랄 정도다. 지난 19일 환경부는 사월마을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월마을 미세먼지와 쇳가루가 암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주거지역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장들과 뒤엉켜 살아온 주민 122명은 이번 결과를 놓고 반발하고 있다. 전체 주민 가운데 15명이 암에 걸려 있는 데다 쇳가루와 미세먼지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거지역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주민들은 조속한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할 전망이다.

사월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같은 내용의 민원을 가진 주거지역은 인천에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지, 살 수 없는 곳인지 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행정적으로 관련법 상 문제가 없는 지역이라면 인근에 그 어떤 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허가가 나갔고,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물론 그 이후에는 인근 시설과 주거지역 주민들 간 갈등이 깊어지고 보상대책이 오고간 지역도 하나둘이 아니다. 과거 인천 서구 한 시멘트 공장 앞에는 공동주택 건축허가를 내줘 입주민들과 공장 간 마찰까지 빚어졌다. 주민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먼지로 건강을 위협받는다며 대대적인 집회를 이어갔고, 공장 역시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오랜 시간 줄다리기 협상이 진행됐고 일부 보상안이 마련되면서 일단락되기도 했다. 시멘트 공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택허가에는 문제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민원은 오늘날에도 인천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사건이 됐다. 인천시는 사월마을 조사결과 발표 이후인 지난 21일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과 제도개선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택과 공장 간 이격거리 규정이 없어 공장이 난립하게 됐고, 주거부적합 지역으로 결론이 난 만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공장과 주거지역을 분리시키는 정책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높아졌다. 현재를 살고 있는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이 발휘돼야 한다. 같은 주거지역 내라고 해도 일조권을 보장받지 못한 경우 잇따라 소송까지 제기되는 경우도 많다.

현재 인천에서 벌어지는 주거지역 이전 요청은 기계적인 법 적용 및 판단에서 벌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류단지에 둘러싸여 이주를 추진하고 있는 연안·항운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법상 문제가 없더라도 상식적인 주거 수준을 고려하지 않다보니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데 많은 예산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셈이다. 여전히 공장과 폐기물시설 등을 둘러싸고 주거지역 주민들 간 마찰은 계속되고 있다. 대대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사월마을은 또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법을 넘어 누구나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