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 황해] 6. '효녀 심청이야기'는 황해 해상교류역사의 압축판
[문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 황해] 6. '효녀 심청이야기'는 황해 해상교류역사의 압축판
  • 남창섭
  • 승인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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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든 소설이든 … 바닷길 따라 꽃피운 '효심'

 

한·중 오가며 만들어진 많은 이야기에
인당수·무역선·상인은 교역 실증으로

'전남 곡성 관음사' '닝보 심가만 심원' '황해도~백령도 두무진'에 흔적 남겨


길 위에는 언제나 역사가 있다. 역사는 기록되고 흔적은 남는다. 길은 육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험난한 바다에도 길은 있고, 그 길에도 여지없이 역사가 있다. 바다는 가늠할 수 없는 날씨로 인해 언제나 두려움이 상존한다. 그래서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은 천문을 알아야 하고 풍랑과 해일을 이겨내야 하는 대담함도 갖추어야 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바닷길이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바다'라는 고속도로를 통해 육지보다 훨씬 많은 인적·물적 상품을 빠르게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황해도 길마다 많은 역사를 남겼다. 사람들이 동서와 남북을 오가며 그 역사를 알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고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변용됐다. 그렇게 수백년이 흐르고 또 천년이 지났다. 하지만 골격과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동양의 핵심인 효(孝)사상이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심청'이다.

우리는 소설 『심청전』의 이야기를 잘 안다. 16살의 심청은 눈 먼 아버지가 젖동냥으로 키웠다. 효녀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하여 홍법사(弘法寺)에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고, 자신은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의 원활한 항해를 위해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제물로 인당수(印塘水)에 바쳐진다. 하지만 이를 갸륵하게 여긴 용왕님이 심청을 연꽃에 태워 살려 보내고 황제는 심청을 황후로 맞이한다. 황후가 된 심청은 맹인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열어 극적으로 아버지와 상봉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딸이 살아있자 이에 놀란 심봉사는 마침내 눈을 뜬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어낸 소설은 아니다. 전남 곡성의 관음사에서 발견된 사적기(事蹟記)에는 원홍장의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있다. 그 내용은 소설의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 효녀 심청의 본명은 원홍장(元洪莊)이다. 16살의 홍장은 맹인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홍법사(弘法寺)에 자신을 시주하였고, 마침 백제로 무역하러 왔던 진(晉)나라 심국공(沈國公)이 홍장을 샀다. 그는 저우산 푸퉈 섬의 부상(富商)이었는데, 험한 뱃길을 무사히 건너기 위한 제물로 그녀를 산 것이었다. 하지만 심국공은 풍랑을 만나지 않고 무사히 귀국하였고 홍장을 수양딸로 삼았다. 이름도 '심청(沈淸)'으로 개명하였다.

이즈음, 진 혜제(惠帝)의 황후가 죽었다. 혜제는 새로이 맞이할 황후가 동쪽 나라에 있다는 꿈을 꾸고 심국공 집을 방문하였다가 심청을 보고 황후로 맞이하였다. 황후가 된 심청은 고국에 있는 부친을 잊지 못하여 온 정성으로 만든 관음상을 고향으로 보냈다. 관음상을 실은 배는 거친 파도에 표류하다가 성덕처녀에게 발견되었고, 그녀는 관음상을 업고 고향인 곡성(谷城)으로 와서 성덕산(聖德山)에 관음사(觀音寺)를 창건하였다.

이야기는 흔적을 남겼다. 첫 번째는 심청이야기의 탄생지인 전남 곡성의 관음사이다. 천년고찰 관음사는 퇴락한 채 인적조차 드물다. 대신 자그마한 석불 상이 빈자리를 메꾸며 고즈넉한 사찰을 떠받치고 있다.

한국에서 탄생한 심청이야기는 중국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저우산(舟山) 군도(群島)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는 중국 4대 불교명산의 한 곳인 푸퉈산(普陀山)이 있다. 이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센지아멘(沈家門) 항구가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오가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그런데 이곳이 백제시기 진나라에서 무역하러 왔던 심국공의 터전이다.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은 이곳 센지아멘에 도착하여 심국공의 수양딸이 되었고 이름도 양부의 성을 따라 '심청'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센지아멘은 이러한 전설에 근거하여 큼지막하게 심원(沈院)을 건축하고 한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푸퉈산은 관음정토(觀音淨土)인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된 것으로 섬 전체가 불교 사원과 유적들이 많다. 이곳이 불교 성지로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 중국의 내륙과 동북아시아의 바다로 통하는 요충지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요인 때문이다. 고대 항해술은 계절풍과 조류에 의존하였다. 신라와 발해, 고려와 일본 등지로 항해하는 상인과 승려, 사신들은 모두 이곳에서 바람과 조류를 살폈다가 출항하였다. 이때마다 모든 사람들은 안전한 항해를 위하여 관음보살께 기도하고 불사(佛事)에도 적극 참여하였는데, 이는 푸퉈산을 해상불국(海上佛國)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은 푸퉈산이 불교 성지가 된 데에는 신라 상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그 이유는 신라 상인들이 중국의 오대산에 가서 관음상을 조각해 본국으로 실어가고자 했으나 암초를 만나 배가 붙어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암초 위에 관음상을 올려놓았고, 이를 보타원의 승려가 불전에 맞아들여 봉안하였다. 그 이후 항해하는 선박은 반드시 이곳에 이르러 복을 빌었는데 감응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이때부터 이곳은 불교 성지가 되었다.

심청이야기는 황해도와 백령도에도 전해온다. 황해도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는 바로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과 백령도 두무진 사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곳은 북쪽과 서쪽으로 흐르는 조류가 서로 부딪치며 소용돌이쳐 성난 물살이 하늘로 치솟는 사나운 곳이기 때문이다. 심청이 연꽃을 타고 환생한 곳은 연봉바위라고 한다. 황해도와 백령도는 심청이 태어난 곳은 아닐지라도 그녀가 죽어서 다시 살아난 곳인 것이다.

이처럼 심청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역사서인 『진서』에 의하면 황후가 된 심청은 3남 2녀를 낳았다. 하지만 혜제가 서거하자 심청은 다시 센지아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푸퉈산의 수정궁에서 보살로 살다가 생애를 마쳤다. 심청의 진솔한 불심이 푸퉈산에 더해진 것일까. 오늘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저마다의 소원에 감응해줄 것이라 믿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향을 사른다.

효녀 심청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든, 소설이든 간에 고대 한반도와 중국 간에 있었던 해상교류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황해를 둘러싼 해안가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이러한 영향 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인당수(印塘水), 용궁과 관음사상, 무역선, 상인 등은 이를 알려주는 실제적인 증거들이다. 여기에 동양적인 세계관인 불교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사상과, 공자의 '효(孝)'사상이 결부되어 현재까지 효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료에 기록된 심청은]

심청은 앞 못 보는 부친인 원량(元良)의 딸이다. 딸의 원래 이름은 원홍장(元洪莊)이다. 홍장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하게 봉양했다. 홍장의 효성은 칭송이 자자했으며 소문을 타고 번져나가 멀리 중국까지 알려졌다. 홍장이 16살 되던 해, 중국의 진나라에서 사자들이 붉은 배 두 척을 타고 와서 홍장을 만났다.

"저희는 진나라 사람들입니다. 영강(永康) 정해(丁亥)년에 황후께서 붕어하시어 성상께서 늘 슬퍼하셨습니다. 하루는 꿈에 신인이 나타나 '새로운 황후는 이미 동국 백제에 탄생하여 장성하였고, 단정하기로는 전 황후보다 더하시니 슬퍼하지 마시오'하고 현몽하셨습니다. 이에 우리에게 폐백 4만단과 금은진보(金銀珍寶)를 갖추어 동국(東國)으로 달려가서 황후를 맞이하라고 하시어 왔는데, 이제 다행히 여기서 뵈옵게 되었습니다."

홍장은 폐백과 금은진보를 홍법사에 시주하고 중국의 주산군도 보타도로 간다. 이곳에서 머물다가 심국공의 양녀가 되어 심청으로 개명하고 궁으로 들어가 진 혜제의 황후가 되었다. 문명황후라 불리었는데 동이족 소호금천씨가 세운 동해담인(東海人)이라고 했다. 타국에서 황후가 된 심청은 조국을 잊을 수 없어 불상을 만들어 돛배에 실어 본국으로 보냈다. 곡성에 사는 성덕(聖德)이라는 아가씨가 관음상을 발견하고 산봉우리에 가람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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