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 석남중 교장

교실은 귀만 있는 존재들로 가득했다. 이름조차 번호로 가려진 학생들은 귀만 쫑긋 세우고 하루 온종일 듣기만 했다. "오늘은 13일, 13번부터 말해 봐." 호명을 받아야 입을 열 수 있었고, 지시받은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리는 났지만 생각과 이어지지 않았다. 말하는 이는 말만 하고 듣는 귀는 듣기만 했다. 입이 귀를 통솔하는 교실 풍경이 그대로 확장해 사회를 이뤘다. 언로는 일방으로 흘렀고, 뭉크가 묘사했던 '절규'처럼 귀를 막고 입을 벌려도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의미를 전하지 못한 소리들은 그림이 표현했듯 불길한 파동으로 세상을 떠돌았다.

'질문이 있는 교실'은 학생을 입이 있는 존재로 다시 규정한다. 물을 수 있어야 자기 말을 지닌 인간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 질문을 구성해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키우고,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협력한다.

그렇게 변한 교실에서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 탄생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귀와 입이 제 역할을 나눠하면서 소통이 이뤄진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그려두었듯 우뚝한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학습 공간은 교육이 추구해 온 이상향이다. 교실에서부터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토론이 이뤄진다.

목소리는 비슷한 크기로 나오지 않는다. 소리가 없을 때는 차라리 듣기 수월했다. 소리가 많아지면 모기만한 소리는 묻힌다. 교실에서 여러 소리가 엉킬 때 작은 입들에 주목해야 한다. 소수자가 익명화되지 않게 학교민주주의를 안착시켜야 하는 데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들이 더 시끄럽다.

어떤 목소리에는 확성기를 대주고 반대소리는 목이 쉬도록 생목소리만 내게 놔둔다. 큰 목소리들만 행세하는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고르게 권리를 누리는 학교는 가능하지 않다. 학교 운동장더러 평평하게 있으라지만 한 쪽으로 기울어져 위태로운 사회가 그 경사를 가파르게 한다.

학교는 평평하지 않다. 한 학교 안에서도 목소리 크기가 다르다. 최근 수능을 둘러싼 논쟁은 큰 목소리를 키우고 작은 목소리는 잦아들게 만든다. 갈수록 기울기가 심해지는데 '인천 대 서울'식으로 비교해 보면 아찔하다. 수능은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반복 숙련에 유리하다. 혼자서 오래, 많이 공부하면 '깔아 주는' 친구들 위에 올라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성취는 철저하게 개인 것이다. 옆자리에 있는 목소리, 옆 동네에 있는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인천 안에서도 서로 듣지 않는데 서울더러 인천을 알아달라고 할 수 없다. 혼자, 하나의 답을 찾는 교실은 여러 소리를 들어야 하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학교가 좋든 아니든 다르지 않다.
이해관계가 상충할수록 목소리 큰 사람이 는다. 입시 문제는 힘 센 목소리들의 격전장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입시 제도를 정부가 다시 건드렸다. 수능 정시 비중 확대 방침이 나오면서 크고 센 목소리들이 전쟁터로 소환됐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민감한 쟁점들을 가라앉혀 놓은 지 오래지 않은데, 정부가 소란을 증폭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면 공정성을 건지기는 커녕 본전도 까먹을 악수다.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소란을 잘 흡수하는 일도 민주주의지만 큰 목소리들을 가라앉히는 데서 멈춰서지 않아야 민주주의다. 교실은 큰소리에 눌려 자기 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에게 소리 내는 법을 익히게 하는 중이다.

수능 정시 비중 확대는 입을 열기 시작한 이들의 소리를 신음과 비명으로 바꿀 것이다. 귀만 있는 존재라고 존재마저 지워지지는 않는다. 귀가 있고 눈이 있으므로 보고 듣고 기억한다. 말하는 입이 하나일 때 최소한 두 배 넘는 귀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내지 못하는 소리를 그려 내는 쪽으로 정부가 다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임병구 교장은 인천 송도고,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인천 명신여고, 인천기계공고, 인천해양과학고, 인천여고, 인천예고 교사를 지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장, 중앙노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인천시교육청 정책기획조정관을 거쳐 현재 석남중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