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경기본사 정경부장

지난 3일 서울 성북구에서 네 모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안전망 붕괴를 경고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00만원인 집에서 살아온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을 놓고 극빈층이 아니라는 비난도 있었다.

주얼리 온라인 몰을 운영해온 네 모녀는 주얼리매장을 운영해오다 2016년 매장을 접고 온라인 몰을 운영했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고 월세도 2~3개월 밀렸다. 우편함에는 카드·신용정보 회사 등에서 보낸 고지서가 쌓여 있었고, 빚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었고 긴급복지 지원도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가 비극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네 명이 살았던 14평짜리 집은 사실상 일터였다. 비싼 월세 액수는 보증금이 큰 집에 들어가기 어려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성북구 네 모녀 자살 사건'과 '탈북자 모자 아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생활고를 비관한 네 모녀의 동반 자살은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인식하는 우리 사회 복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만 골라서 혜택을 준다는 '선별적 복지'를 아무리 촘촘히 짜도 어딘가 구멍이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근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대선을 1년여 앞두고 기본소득을 제시한 민주당 대통령 경선후보 앤드루 양이 있다. 대만계인 그는 자신의 책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국민 1인당 1000달러(약 116만원)의 '자유배당금'을 공약했다. 그는 무인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 미 전역의 350만명에 이르는 화물차 기사는 물론 그들이 이용하는 모텔과 화물차휴게소 등 연관 산업 종사자 72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인간이 시장을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배당금이 실직자의 자존감과 자립 의지를 높여 2025년까지 약 2조5000만달러(약 2842조원)의 경제성장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원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한테 세금을 걷어 마련하자는 게 그의 아이디어다. 놀랄만한 일이다. 그것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기본소득을 하자는 공약이 나오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가난한 사람을 선별적으로 지원해 주는 복지시대는 끝났다. 성북동 네 모녀 자살사건처럼 우리 사회의 자영업자를 비롯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안은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이다. 최고의 복지국가라는 핀란드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장기 실업자 2000명에게 2년간 매월 560유로(약 72만원)를 지급한 결과 첫째, 고용과 소득 등의 행정등록 자료를 토대로 볼 때 1차년도(2017년)에는 특별한 고용효과를 발견하지 못했다.

둘째, 2년의 실험기간이 끝날 무렵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기본소득 수급자들의 행복도와 삶의 질 수준이 전통적 실업급여 수급자들보다 현저하게 컸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이를 지원하는 노력을 더 강화하겠다"고 되풀이할 것인가.

다행인 것은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도내 청년들에게 1인당 연간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소득'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농민 기본소득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의 기본소득 실험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적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사전분배 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경기도의 국민기본소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재정 탓만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실업자로 묶어놓는 선별복지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정부는 이제 기본소득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총선이 기본소득시대의 막을 올리는 출발선이다. 우리나라 추가복지 재정잠재력은 기본소득을 실시할 만큼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재원이나 국민의 인식을 탓할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