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지난 여름 고등학교 동창들과 경기도 포천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친구가 거위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권해 찾아갔다. 일행이 방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데, 주인이 살아 있는 큰 거위를 가슴에 안고 불쑥 들어오더니 "요놈이 오늘 재료"라고 말한다. 요리의 신선도를 내세우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처음보는 광경이라 조금 당황했는데 주인이 눈치를 챘는지 "모든 생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거위의 두리번거리는 눈이 우리 일행을 둘러보는 주인의 눈을 닮은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비슷하지 않아"라며 동의를 구하니 빙그레 웃는다. 잠시 뒤 거위 날고기와 탕요리가 나왔는데 방금 봤던 거위가 떠올라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상어지느러미가 고급 요리로 떠오르자 지느러미만 잘린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죽는 상어가 세계적으로 연간 수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때문에 캐나다에서 상어를 잡지 말고 지느러미 요리도 먹지 말자는 캠페인이 열리기도 했다.
선진국 일수록 동물보호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호주 케언주시 도심 한복판에 있는 빌딩 옥상 돔에는 악어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영국에서는 매년 야생동물 사진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이른바 인간과 동물의 공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동물 보호단체가 증가하고 있다. TV에서는 사람과 반려동물 간의 특이한 사연을 소개하고, 유기된 동물을 구조해 새 주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햄스터나 이구아나 등 특이한 동물을 기르는 가정도 있다.

동네 산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들끼리 마주치면 마치 친한 사이처럼 금방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광경이며, 산고양이에게 주기 위해 과자나 통조림 등을 배낭에 챙겨 온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보신탕'이라는 말은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절대 써서는 안되는 금기어가 됐다.
'애완견'을 '반려견'으로 부르는 풍조가 급속히 진전돼, 아직도 애완견이라 칭하면 동물 키울 자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모든 동물은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는 식당 주인의 말은 틀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