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 Siti Plan 대표이사

문득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반문해 본다. 시간은 과연 만인에게 공평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요즘의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동시대의 사람들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누구는 1990년대에 머물러 살고 있고, 누구는 2030년대를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1960년대를 살고 있다. 현재라는 시간은 단지 타자와의 접촉을 위한 프로토콜일 뿐 모두 각자의 시간대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두를 통합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무리들 간의 집단적 통념이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만사 제쳐두고 거리에 나와 각자의 주장을 토해낸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정신을 최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대에 수많은 시간대의 사람들이 적절하게 공존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제공하겠다는 지혜로운 발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사람들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고도화되어가니 말이다.

코넬대의 로울러(Lawler) 교수와 이화여대 윤정구 교수가 쓴 <개별화 되어가는 세상에서의 사회적 헌신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라는 책에서 갈수록 개인화되어가는 개인들에게 어떻게 사회적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결과를 통해 가설적 해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목적과 사명의 울타리가 쳐진 운동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만의 운동장이 아닌 다양한 운동장이 공존하도록 만들고 서로 다른 운동장에서 각자 신나게 체험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들이 서로 융합하고 재창조되는 집단지성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다차원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과거의 통념으로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일자리 문제만 하더라도 정규직을 늘리자고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지만 미래에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즉 자유직이 대세가 될 전망이다. 기계노예들의 활약이 드세질수록 또한 모두가 더 많은 자유를 원할수록 자유직은 통념이 된다.

또한 블록체인 기반의 상시 투표시스템이나 지역코인 등의 가치교환시스템이 활성화되면 정부의 기능 중 상당 부분을 다양한 운동장의 자치조직이 대신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 축소가 불가피해진다.
이런 미래를 예견한다면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후세들에게 엄청난 숙제를 안기는 꼴이다. 교육시스템, 경제시스템 심지어는 주거환경조차도 기존의 통념을 깨야 하는 지금 1980년대의 시대정신으로 2050년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몰락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심히 두려운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좌우 갈등은 결코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 어떤 정치세력도 2050년대를 대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항상 혁신적인 미래기술에 의해 기득권이 몰락하며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강대국이 혁신기술로 무장한 상대에게 힘없이 무너진 역사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기술혁신으로 기존의 통념이 모두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인식으로 무장한 '미래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은 대한민국은 결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치권에는 이런 시대적 메시지를 제시하는 세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가슴으로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미래의 상식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마치 마부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미래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자신의 시간에서 벗어나 2050년대의 시간대에 맞는 지도자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하진 대표이사는 인하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부동산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제19대 국회의원(분당을),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대상(2015), '자랑스러운 신한국인' 대통령상(1997)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