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침묵이 때때로 커다란 나무가 될 때가 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보내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면서 바라보는 영혼은 땅 속에서 막 파낸 석관(石棺)처럼 차고 단단하다. 꽃과 하늘과 무덤에게조차도 침묵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 침묵은 죽음의 공간을 배회하는 무겁고 음산한 침묵이 아니라 불과 같이 하늘로 타고 오르는 향일성 침묵이다. 침묵이 쉽게 흐르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지 않아서 가끔은 하늘을 등 뒤에 거느리는 나무가 될 때가 있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