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칭우 경제부장
▲김칭우 경제부장

일본 정부가 7월4일 전격적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관련 3개 소재부품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지 넉달이 흘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30일 '일본 수출규제 100일의 경과, 영향 및 향후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당초 상당한 경제적 영향이 우려됐지만 현재까지 그 영향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기업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내생산을 지원하면서 실제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자금 유출도 외환위기 및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기업의 재무구조 건전성이 개선됐고 일본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풀이했다. 보고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갈등 심화로 일본이 향후 수출규제를 강화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수 있으며 이러한 불확실성의 상존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불매운동 등 영향으로 일본 의류, 식품, 자동차, 관광 등 소비재 소비가 급감하면서 일본의 관련 업종에는 큰 타격이 발생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8월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 맥주의 한국 수출은 전월 대비 92.1% 감소했고 일본산 브랜드 승용차는 전년 동월에 견줘 60% 줄었다.
일본 대형 의류업체 '온워드 홀딩스'는 한일 관계 악화로 매출이 하락하고 있어 내년 2월까지 한국 내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주요 관광산업에도 타격을 받고 있다. 8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은 30만8000명 정도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약 48% 줄었다. 9, 10월 통계를 보면 일본 맥주는 99.9% 감소, 일본인 한국 방문은 오히려 늘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출규제 100일 동안 반도체 부문의 피해 사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소재·부품 수입 차질로 인한 반도체 부문의 피해 사례는 없다"고 밝혀 KIEP 보고서와 같은 맥락의 의견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에서 발표한 한일 갈등의 중간평가 보고서는 일본이 강행한 수출규제 조치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향후 국면이 장기화 될 경우 오히려 일본 경제의 침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의 한국 수출실적은 한국의 일본 수출실적보다 2배 이상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근거를 들어 양국 간 무역 갈등의 중간평가는 사실상 '한국의 판정승'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4개월을 종합해 보면 먼저, 일본이 핵심 소재·부품의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애초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됐으나 현재까지 그 영향이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한국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예상보다 거세게 일어 일본의 소비재 수출이 제로(0)에 가깝게 감소했다. 일본으로 여행 또한 크게 감소해 한국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일부 지방 도시들이 큰 피해를 입는 등 일본의 피해가 더 눈에 띈다.

그동안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된 양국 간의 갈등은 최근 들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등 다소 완화되는 양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 참석 차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한편, '아세안+3' 회의에서는 짧게나마 한일 정상이 회담을 가지면서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 그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아태지역 6개국(한·중·일, 인도, 뉴질랜드, 호주) 등 총 16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를 뺀 15개국 중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곳은 한군데다. 바로 일본이다.

지난 4개월 일본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우리 경제가 잘 버텨냈고 오히려 신남방정책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달 부산에서 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참석도 점쳐지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 종속적인 경제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대등한 경제력으로 일본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진 상태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다. 아쉽다면 그 정상회담을 인천에서 개최했더라면, 남북간의 이슈가 더욱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