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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까운 친구를 만났다. 모처럼 근교로 나가 산책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의기투합하고 나섰건만 쉽지 않은 나들이였다. 업무시간 외에도 이어진 업무 관련 연락 때문이었다. 친구는 휴가를 낸 상태였는데도 어째서 전화를 받아야 했을까. 전화를 받는 동안 친구도 나도 휴대폰 너머로 무언가 문의를 하는 회사 직원도 (아마) 민망하고 불편한 시간이었다.

많은 회사원들이 이러한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올해 프랑스에서 퇴근시간(6시) 이후 업무 관련 문자 및 메일 등의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가 법제화됐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프랑스에서 발효된 'right to disconnect'는 우선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 외에 업무 관련 이메일을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법안은 특히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상사들이 부하직원의 업무시간 이후는 '업무시간 이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 외에 갖은 이유로 상사에게 호출되는 것이 웃지 못 할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쉬는 날 팀 내 사기 증진을 이유로 등산에 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시간 이후에 강요되는 회식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어떤 직원이 주말에 자기 상사에게 업무 관련 문의를 하거나 지시를 하는 일은 드물지만 부하 직원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은 흔하다. 물론 이때 상사가 취하는 연락을 무시하거나,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선택지가 부하직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그런 선택지를 고를 경우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융통성 없고 뻣뻣한 젊은 애들'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진정 '업무'는 평생의 업인 걸까. 직업은 생활을 위한 '직업'이어야지, '업보'여서는 안 된다. 일정 시간 외에 업무를 받지 않을 권리는 누군가에게는 업무지시를 하지 않을 의무를 수반한다.

우리는 '업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님을 가슴에 새기며, 각자의 권리와 의무 또한 가슴의 다른 한 구석에 새겼으면 하는 새해의 간절한 바람이다. #업무시간외 #업무금지 #right to disconnect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