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자고 나면 놀랄 만한 뉴스들이 기다리는 요즘이다. 굳이 나라 밖 소식까지 들춰볼 겨를도 없다. 그래도, 이따금 가슴이 저려오는 외신 뉴스가 있다. 바로 이웃 일본의 너무 심각한 구인난 소식이다. 그 뉴스들은 금방 창백한 우리 청년들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요즘 일본 청년들, 참 복도 많지.
일본 경제가 호황을 맞아 실업률이 2%대로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올해 봄 일본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역대 최고인 98%를 기록했다. 일본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한술 더떠 98.1%다. 기업들은 대학 졸업반뿐 아니라 3학년들에까지 '입도선매(立稻先賣)'식 채용에 나서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열리는 취업설명회는 대학 4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다. 대학 3학년생들을 미리 붙잡아 두려는 쟁탈전이다. 이미 3학년생들의 40% 정도가 취업이 결정된 상태라고 한다. 일본은 2025년까지 특히 일손이 부족한 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 50만명에게 문을 열 계획이다.

일본 역시 저출산 여파로 대학 졸업생은 줄고 있지만 기업들이 아베 노믹스의 초호경기를 맞고 있어서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골라, 골라, 골라서 가는 취업시장이다. '오와하라'라는 즐거운 비명도 터져 나온다. '끝내라'라는 일본어(終わゐ·오와루)와 '괴롭힌다'는 영어(harass)의 조합어이다. 기업들이 학생들에게 "이미 우리 회사 붙었으니 제발 다른 회사 기웃거리지 말라"며 전화나 메일로 귀찮게 구는 걸 말한다.
지난해 12월 우리 교육부가 발표한 대졸 취업률은 67.7%이다. 작년의 청년 실업률은 9.9%로 역대급이다. 구직활동도 포기하고 경제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는' 청년들이 3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졸업'이 곧 '실업'으로 이어지는 슬픈 풍경이다. '오와하라' 대신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 '흙턴(흙수저 인턴)', '비계인(비정규직과 계약직의 반복)' 등이 우리 청년들을 대변하는 유행어다.

일본이라고 늘 이렇지는 않았다. '프리터족(평생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영위)'이나 '메뚜기족(취직과 퇴직을 번갈아가며 계속함)' 등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시절 나온 얘기들이다.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한국과 일본이 왜 이렇게도 달라져 있는가.
분명한 것은 일자리 지옥이 우리 청년들의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지도층, 기성세대가 못난 탓이다. 오늘 일본 청년들이 행복한 것은 그들 지도층과 기성세대들이 잘나서이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는 오직 선거공약에서만 존재한다. 6.13 지방선거 때 나온 일자리 공약을 합치니 256만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듣는 사람도 "하는 소리겠지" 하고 만다. 이제 누가 우리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소득주도 성장이든, 포용적 성장이든 다 좋다. 그깟 포장이 뭐 중요할까. 삼성전자가 평택공장을 짓느라 수백 가지 규제에 맞서 장애물 경기를 벌였다고 한다. 웬만한 공장 하나 지으려면 관련 부처는 물론 국회의원 수십명은 포섭해야 한단다. 그뿐인가, 시민단체, 환경단체, 주민대책위원회까지. 이 나라는 어른들이 허울좋은 명분으로 청년들의 밥 그릇을 걷어차는 그런 나라다.

답답한 것은 그런데도 어느 누구 하나 일본의 '오와하라'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청년 일자리 난국을 탈출했는지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일본을 한번 베껴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존심인가, 콤플렉스인가. 그 와중에 자기 식솔들의 부정한 취업청탁에는 프로급이다. 국정원, 금감원, 은행장의 빽도 없이 죽어라 원서만 쓰는 취준생들은 그럼 뭐란 말인가.
정히 길게 청년 일자리 문제를 계속 팽개친다면, 어느 날 청년들이 일어설 것이다. 2차대전 후 영국 '앵그리 영 멘' 세대의 구호는 '성난 얼굴로 뒤돌아 보라'였다. 사람이 침묵하면 나중엔 돌들이 소리 치리라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