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곤 노동부 경기지방고용지청 노사상생지원 과장
예전과 달리 유학·이민·배낭여행 등을 통해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을 경험하는 국민 비율이 높아졌다. 이들 중 상당수가 그 나라와 우리나라를 비교해 "행복한 지옥과 지루한 천국"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후 6시만 넘으면 문을 닫는 대다수 상가와 해가 지면 한산해지는 거리 풍경, 일찍 귀가해 가족들과 식사하며 TV시청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24시간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밤에도 먹고 놀 곳이 지천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함을 넘어 불편함과 지루함을 주었던 것 같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에 엄지척을 하고, 우리도 한때 관광 모토로 '다이나믹코리아'를 내세우기도 했을 정도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녁 모습에도 조금씩 변화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밤 9시 넘어서까지 운영하는 식당을 찾기 어려워졌고, 당연시 여기던 편의점의 24시간 영업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도 들린다. 밤늦게라도 편하게 배달시켜 먹던 치킨에도 별도의 배달료가 붙어 살짝 고민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다이나믹 코리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올해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은 그 자체로 근로자의 소득 인상 효과를 갖고 왔지만, 시장이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꼭 임금 인상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직장을 잃기도 했고 한편에선 영업시간을 줄여 변화에 적응하기도 한 것이다. 또 다시 큰 변화의 한축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7월1일부터 적용된 근로시간 단축이다. 쉽게 말해 현행 주 68시간까지 가능했던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대폭 축소되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시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법으로 강제되는 근로시간 단축은 더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의 안정적인 안착을 위해 여러 지원책을 실시 중이다. 우선 기존 기업지원금의 문턱을 대폭 낮추고 확대·시행하고 있다.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사업'을 통해 교대제를 개편하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한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신규채용 지원금, 설비투자 융자제도 등 각종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지청에서도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수차례 간담회를 실시하며 이러한 지원제도를 설명하고, 또한 사업장 준비상황과 애로사항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간담회를 하며 느낀 것은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은 이미 이전부터 이러한 변화를 예상해 조금씩 대비를 해왔다는 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이 그리 만만한 과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종별로 보면 생산직은 당장 교대제를 개편하고 인원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생산직 인력을 빠른 시간에 계획대로 충원하기는 쉽지 않다.

이로 인한 인건비 증가도 큰 부담이다. 이에 비해 사무직, 연구직, 영업직 등 소위 관리직군은 엄격한 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작게는 직원들의 커피 타임, 흡연시간까지 통제해야 하는가에서부터 업무상 거래처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근로시간인가? 해외 출장을 위해 걸리는 비행기 탑승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사무직이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하기까지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를 묻는 사업장도 있을 정도다. 기존에도 존재했으나 부각되지 않던 부분들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행복한 지옥의 사회에서 지루한 천국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처럼 크고 작은 고민거리들이 숙제처럼 불거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 사업장 관계자와 근로자들은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동의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주 40시간제가 도입되던 때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주 40시간제에 대해 경제적인 타격을 우려하는 부정적인 의견이 상당했다. 하지만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 40시간제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만큼 사회가 변화했다. 옳은 방향의 사회 변화를 위해 당장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지혜를 모아온 국민들이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코 앞에 다가왔다. 세월이 지난 후 주 52시간제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지루한 천국의 삶을 누리는 후세대를 보며 우리가 이루어낸 또 다른 성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