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오늘날 우리는 평화로운 시절을 살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그는 통계로 말한다. 2000년 전쟁 사망자는 31만명인 반면 자살자는 87만3000명. 자동차 사고 사망자는 126만명이다. 국제기구 통계인데 '평화로운 시절'을 입증하는 지표다. 물론 이후에도 전쟁은 줄고 있다. 이유는 만연한 자본논리다.
과거 제국의 시대 전쟁은 얻을 게 많았다. 땅과 땅 위의 모든 것들은 전쟁 대가로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다. 전쟁 비용은 크게 는 반면 얻을 건 변변찮다. 가치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땅을 빼앗은들 별 것 없다. 하라리 말마따나 실리콘밸리나 할리우드를 점령한들 손에 쥘 건 별로다.

그러니 오늘날 인류는 전쟁 아닌 '거래'를 택한다. 만연한 자본주의체제에서 교역과 투자는 큰 가치를 갖는다. 돈과 상품은 돌고 돌 때 가치가 부푼다. 그러니 그게 잘 도는 상황, 즉 '평화'야말로 돈 되는 환경의 핵심 요소다. 지구촌을 잇는 방대한 네트워크도 '평화'를 자양분 삼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일지언정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는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 상황도 마찬가지. 긴 세월 맞서 으르렁거렸지만 잃는 것만 수두룩했다. 북한은 더 심했다. 지구촌 네트워크로부터의 배제는 '인민'의 불행으로 이어졌다. "우리식으로"란 구호는 헛헛해 시대를 건너기 버거웠다. 북핵은 이런 위기의식의 산물인데, 결국 강력한 전쟁무기가 평화체제 이행을 담보한다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됐다. 지난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로부터 70여일. 짧은 시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70여 년 적대관계였던 걸 고려하면 놀라운 변화다. 하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더디고 우여곡절 많을 거라는 것. 그렇다고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 피차 70여년 주적(主敵)으로 살았기에, 짧은 시간 뒤바꾼다는 건 과욕이다.
4월 남북정상회담 주제는 '평화, 새로운 시작.' 남북 간 벌이는 모든 일이 새로운 시작일 거라는 메시지다. 그게 뭐든 피차 분단 이후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제대로 멀리 가려면 뛰지 말아야 한다. 이제 겨우 70일 지났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