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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플러스] 건축가 이의중 '낡은 것은 버려라' 이 또한 낡은 생각

2018년 07월 04일 00:05 수요일
▲ 얼음 창고를 재생한 카페 '빙고'의 내부 모습.
이의중(39) 건축재생공방 대표는 낡고 오래된 건축자산을 고쳐 써 다음세대에도 쓸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건축공간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건축자산 지킴이 활동을 하는 셈이다.

그가 평생을 두고 화두로 삼은 명제는 고쳐 쓰는 건축인 '건축재생'이다. 지금까지 줄곧 놓지않고 천착하며 고민하는 키워드인 것이다. 헌집 주면 새집 지어주는 건축이 아니라, 헌집을 살만한 매력적인 집으로 고쳐 준다. 새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가치에 주목한다. 그는 1920년대 지어진 100여년 된 얼음창고를 재생해 1층은 아내가 아카이브 카페 '빙고(氷庫)'를 운영하고, 2층은 이 대표가 사무실로 쓰고 있다.

2015년 개항기 흔적이 남아있는 인천 중구 신포동 골목길에 빼꼼히 문을 연 재생 건축물 '빙고'는 그의 건축철학이 담긴 첫 작품이다. 그리고 인천에 '낡은 공간을 재발견'하는 자신의 건축 재생 철학을 심어나가고 있다. 그가 어떤 고민 끝에 재생건축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의 인생곡선을 따라가 본다.


# '추억'이 강제로 철거 당했다

"2002년 당시 시세 1억9000만원 정도였던 아파트가, 재건축 이후 지금은 10배 이상 뛰었어요. 그런 경제적 혜택 때문에 부모님 세대는 눈앞의 부동산 가치 상승을 가져다 주는 개발방식을 찬성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공간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억이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는 서울 잠실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적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땅뺏기 놀이를 하던 추억이 깃든 잠실 주공 3단지 저층 아파트는 전면 철거 재건축으로 한순간에 없어졌다. 그건 폭력이었고, 그 상실감은 그가 삶과 건축철학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축이 됐다. 고쳐서 쓰는 건축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교 4학년 때 겪은 그 충격은 '재생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였다. 도시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게 올바른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계속 쓸 방법은 없을까 …. 사람과 사람, 공동체 문화의 상실을 가져오는 물리적 개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고쳐쓰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생건축이란 과거 건축물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원형 또는 그 일부를 디자인 요소로 살려 새로운 기능과 용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가치와 효용을 잃은 낡은 건물에 새숨을 불어넣어주고 그 건물에 남아있는 장소성과 역사성이라는 유무형의 가치를 지속시키는 일종의 가치보존적 건축행위이다.

# 매일 아침 도시락 3개 들고 출발

그는 대학에 왜 가야하는지, 아니, 고등학교도 왜 가야 하는지 몰랐다. 당시 동네에 실업계 디자인 고등학교가 새로 생겨 지원서를 썼다가 은행원이던 아버지로부터 '무슨 실업계냐'면서 엄청 혼났다고 한다.

남서울 대학교에진학해 건축설계를 전공한 그는 2004년 서울의 한 인테리어 사무소에 취업했다. 그 때는 '몰라보겠다. 옛날 모습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어야 잘한 것이었다. 첫 직장이었지만 '이것이 과연 내가 추구하는 건축일까'라는 고민에 부딪혔다.

"철학이 다른 건축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재생보다 리노베이션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던 때였죠. 기존 것들을 소모품처럼 다 뜯어내고 'Before와 After'가 분명한 트렌드만 쫓는 당시 건축문화에 회의감을 느껴 1년 만에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그는 건축 리노베이션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접하고 일본으로 갔다. 하루 12시간씩 어학과 전공 공부를 했다. 석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건축사 사무실에 취업해서도 하루에 도시락을 3개씩 싸가지고 다니면서 일과 공부에만 매달렸다. 오래된 마을을 답사하고, 재생건축의 실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일본 건축사 자격증과 재난 대응 관련 자격증, 오래된 민가를 감정하는 고건축 감정사 관련 자격증도 땄다.

"일본 유학으로 건축 재생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잠시 인생의 큰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지만 지금의 길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인생 '정점' 찍어준 두 스승

2005년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서 어학공부를 마치고, 2006년 고베예술공과대학원에서 건축역사 전공으로 전통건축을 연구했다. 야마노우지 마코토 교수에게 동아시아의 고건축과 전통마을에 대해 배운다. 건축뿐만 아니라 예술전공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견문도 넓혔다. 야마노우치 마코토 지도교수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2년동안 100군데 일본 전통마을과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재생건축 현장을 몸으로 느꼈다.

졸업 후 그는 쿠라시키에서 건축재생작업을 하던 건축공방 나라무리 토오루 설계실에서 본격적인 건축재생의 경험을 쌓았다. 히로시마 교수이기도 한 나라무리 토오루는 일본 고(古) 민가재생을 이끌었던 1세대였는데, 마지막 제자로 들어간 것이다. 3년간 현장 실무를 익히며 철학을 전수 받았다. 스킬보다 정신교육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을 어떤 자세로 다뤄야하는지, 어떤 디자인을 죽이고 살릴 것인지를 배웠다.

"나라무라 토오루 선생은 도시 건물들을 모두 문화재처럼 보존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써야 한다' '잘 활용해야 보존된다'는 시각이었습니다. 원형 그대로 보존이 아니라 활용을 통한 보존. 당장 높은 빌딩을 짓기보다는 다듬고 가꿔서 그 건물의 역사, 분위기를 살려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관점이었죠."

그는 3년 동안 쿠라시키의 3, 400년 된 민가를 재생하는 프로젝트 30여건을 수행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 결과 2013년 JIA건축대상 특별상, 일본건축가협회 업적상을 수상하며 '고(古)민가재생'이라는 키워드를 정립시킨다.

# 지속가능한 인천에 새 둥지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의 건축현실은 재생건축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 자신의 재생건축에 대한 관점과 시선은 쓸모가 없었다. 나락에 빠진듯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니 전기 코드가 2개여서 3개짜리를 꽂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죠. 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아이 분유값이 없어서 손벌리고 다녔으니까요. '내가 잘못된 길을 걸었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반년 가량 백수 끝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AURI(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도시재생사업 연구원으로 일하며 전국의 도시재생 사업을 경험한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철학과 정부의 재생방향은 맞지 않았다. 장소와 역사에 대한 조사없이 자본논리로 건물의 맥락을 지우는 행위가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다 그는 연고도 없는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인천 중구나 동구 등 원도심에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건축물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오랜 이야기가 쌓여 있는 매력에 이끌려 왔다. 그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인천에서 개항기 건축자산에 역사의 흔적을 남기며 생명을 불어넣는 건축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은 건축자원이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고, 저평가 됐습니다. 쇠퇴로 인해 오래된 것들을 오히려 잘 보존하고 있죠. 원도심 건물들이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안에는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지속가능한 도시예요.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지역과 함께 저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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