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극계 큰별 '故 윤조병'에 대한 오마주
▲ 29·30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갖는 연극 '위대한 놀이'는 '인천 연극을 전국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는 평을 받는 故 윤조병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아들 윤시중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제공=인천문화예술회관
▲ 윤시중 감독은 연극 '위대한 놀이'가 "인간의 상상력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진제공=극단 '하땅세'
▲ 故 윤조병 극작가.

윤조병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
29·30일 인천문예회관서 공연
아고타 크리스토프 소설 '원작'



인천을 대표하는 연극인으로 불리며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연극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故) 윤조병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연극 '위대한 놀이'가 오는 29일 오후 3시와 8시, 30일 오후 3시 세차례에 걸쳐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선보인다.
'위대한 놀이'는 윤조병 극작가의 아들인 윤시중씨가 대표로 이끌고 있는 극단 '하땅세'의 작품으로 윤 대표가 직접 연출을 맡아 지난 1월 제10회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7 한국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과 '2017 한국연극협회 월간 한극연극 공연 베스트 7'에 선정됐다.

극단 '하땅세'의 연극 '위대한 놀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은 다른 곳에>, <농담> 등의 작가 밀란 쿤데라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1936-2011)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원작이다. '소설쓰기'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연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연극 만들기'에 대한 극단 '하땅세'의 대답으로 풀어낸다.
대도시의 공습을 피해 국경지역 할머니 집에 맡겨진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는 알파벳 순서만 다른 쌍둥이 형제다. 전쟁의 포화 속, 괴팍한 노인 밑에서 이들은 삶의 비참함과 잔인함을 겪는다. 결국 형제는 현실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서로의 신체를 학대하고 욕설을 퍼붓는 놀이를 통해 결핍과 수치로부터 오는 고통에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종전과 어른들의 죽음을 거쳐 새로운 출발에 놓이기까지 거짓말과 놀이는 끝없이 이어진다.
'위대한 놀이'는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전쟁으로 왜곡된 인생들의 우화같은 이야기들을 잔인한 풍자 속에 담아낸다. 또한 그들의 생존방식으로 현재 사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질문하며,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던지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남긴다.

연극 '위대한 놀이'의 극본을 쓴 고(故) 윤조병 선생은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11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그의 작품집으로는 <농토>. <모닥불 아침이슬>, <설레이는 물결치는>, <개구리 이야기> 등과 시집 <커피두고 갈게> 등이 있다.
1978년 현대문학상, 1981년 대한민국 연극제 대상, 1985년 대한민국 연극제 희곡상, 1990년 전국연극제 대상, 2010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문화상 예술부문 연극대상을 수상했다.
충남 연기가 고향인 윤조병 선생은 1969년 인천으로 이주한 뒤,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다 1980년대 초부터 인천 연극과 만나 1990년 당시 최초로 지역 공립극단인 인천시립극단을 창단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초대 상임연출자로 활동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대통령상 두차례, 국무총리상 한차례 등 인천연극을 전국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인천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연극 '위대한 놀이'는 인천 연극 발전에 지대한 공이 있는 윤조병 선생에 대한 오마주(Hommage)인 동시에 그가 다시 한번 인천관객들을 만나는 뜻 깊은 자리"라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극본을 쓴 윤조병 선생의 연극적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한 작품이다. 원작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면서도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연극적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여승철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윤시중 '위대한 놀이' 감독]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 … 그것을 가지고 노는 이야기"

"아버님은 지난해 10월초 병상에서 의식을 잃기 며칠 전까지도 3권의 책을 마무리하는 강한 의식의 예술가셨어요."
연극 '위대한 놀이'를 공연하는 극단 '하땅세'의 대표로 직접 연출을 맡은 윤시중 감독은 극본을 쓴 극작가인 아버지 고(故) 윤조병 선생이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의 장면들을 돌아보며 "인천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는 '하땅세' 배우들에게 마지막 작품집에 친필 싸인을 해주시며 삶의 마무리를 의미있게 했을 정도로 연극을 사랑했던 분이지요"라고 밝혔다.
"아버님은 독특한 삶의 방향을 살아가셨어요.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할 텐데, 아버님은 대학을 안가도 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저를 앉혀놓고 설명하셨지요. 때로는 무용 공연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내게 '시중아. 아는 무용가가 있으니 거기서 무용을 해볼래?'라고 물으시기도 했어요. 아마 저 스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라는 생각이셨을 거에요.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업을 하시다가도 개인적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할 때면 교수실에 있는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기를 사용하실 만큼 원칙을 중요시하신 분이세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 진학을 준비하던 윤 감독이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가면서부터. 하지만 연극을 왜 해야하는지 모른채 들어간 연극과에서 윤 감독은 좌절과 방황을 경험한다.
"대학에 가니 연극이 좋아서 평생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는 동기들이 많았는데 저만 연극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어요. 배우가 되려고 무용이나 노래도 배우고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한계를 느껴 연기자는 포기하고 교육자가 되려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지요. 그곳의 길거리에서 산 엽서와 편지지에 뉴욕의 거리를 그려 보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제가 경험한 뉴욕의 생활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안달하는 저에 대해서 알게 됐지요. 이때 처음으로 제가 왜 연극을 해야하는지 깨달은 것 같아요."
뉴욕에서 돌아온 뒤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윤 감독이 대학로 소극장의 한 공연을 보고 연출을 시작하게 된다.
"조명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객석에 앉아 '나 스스로 배우 한 명, 조명 한 대로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자'며 자기 최면을 걸었죠. 그렇게 만든 첫 공연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라는 가족극이었고 반응이 좋아서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윤 감독은 '위대한 놀이'가 전쟁의 지옥같은 환경에 있는 어린 쌍둥이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관객들에게 연극은 결국 사람이 하는 '위대한 놀이'라는 걸 목격하기를 강조한다.
"이번 '위대한 놀이'는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에 대한 연극이지요. 마음껏 상상을 하는 인간이기에 나라도 만들고 국경을 만들고 전쟁도 합니다.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믿고 감정도 생기고 그러다가 다툼도 하지요. 우리가 믿는 사회규범, 종교 등은 상상력 덕분에 굳건해지고 깨뜨리기 어려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결국 손에 잡히지 않는 국가라는 개념도 그 상상력의 믿음으로 유지가 되는 거지요. 인간들의 강력한 무기인 상상력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극단 '하땅세'는]

10년전 창단한 극단 '하땅세'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펴보라'는 의미로 윤조병 선생이 이름을 제안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처음에 그렇게 거창한 뜻이 싫어 '하늘부터 땅 끝까지 세게 간다'는 뜻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하늘, 땅, 세상이라는 의미가 점점 더 중요하게 느껴져 아버지의 의미를 많이 쫓아가는 상황이다. '하땅세'의 뜻이 바로 연극정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땅세'는 창단이후 '오버코트', '붓바람', '하땅세', '타이투스', '천하제일 남가이', '파리대왕', '파우스트Ⅰ, Ⅱ' 등의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연극계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는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한국 최초로 '아시안 아트 어워드'를 수상했고 이때 영국의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인 사지드 자비드가 국내 언론에 쓴 '싸이·슈퍼주니어·하땅세 극단의 공통점'이란 칼럼은 '하땅세'의 지명도를 국제적으로 높였다.
지난해 한국을 뜨겁게 달군 '위대한 놀이'로 제10회 대한민국연극대상의 대상과 평론가 베스트 3, 한국연극 베스트 7 등을 수상했으며 고인이 된 윤조병 선생에게도 제54회 동아연극상 특별상이 수여됐다.
지난 2015년에는 O tvN의 제 1회 융복합 콘텐츠 공모전 '오 크리에이티브'에서 대상을 받았다. 동아연극상에서는 신인연출상과 신인연기상, 밀양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연극제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라이트 씨어터' 전용극장에서 '오버코트'를 매주 토요일에 공연 중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그때 변홍례'가 공식 초정되어 10월 말에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어 국내외의 기획자들에게도 공연이 선보인다.

/여승철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