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진짜 인천 찾기' 한길 … 골목골목 걷고 걸었다
▲ 지난달 '굿모닝 인천'을 내려놓은 유동현 전 편집장은 "미추홀도서관에서 주간인천이라는 귀한 신문을 정리하고 있다"며 "6·25 전쟁 이후 내용이 빈약한 인천의 모습을 끄집어 내겠다"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1997년 3월7일 인연 시작 … 달마다 '인천속살' 담아내 지난달까지 250여호 발행
동구 송현동서 나고 자라 인천 풍경·삶 '애착 … "해안길 순례 못해 아쉬움"



몸에 스민 문자 향이 주변을 정갈히 한다. 걸음과 손짓, 말투 속에 담긴 사상까지. 모든 게 21세기 인천인을 자처하는 그에게서 오늘을 걷는 우리를 겸허히 만든다. 21년, 인천시 소식지인 '굿모닝 인천'의 편집장으로 활동한 유동현(60)씨를 일컫기에 모자람이 없다. 굿모닝 인천에는 인천의 어제와 오늘이 녹아 있다. 그의 인천시민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화려한 네온에 취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유 전 편집장에게 물었다. "왜 이리 인천을 붙잡고 있느냐고." 대답은 칼 같고 단순했다. "내가 인천인이고, 인천이 날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쪽에서 해가 뜹니다."
달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책이 있다. '이번 호에는 어떤 내용의 인천 속살이 담겼을까'.
어김없이 책을 펼치면 훈훈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300만 인천 시민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다. 글자에 담긴 시민을 향한 애틋함, 사진 프레임 뒤에 쿰쿰한 삶의 냄새까지. '굿모닝 인천'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힌다. 그 속에는 21년 굿모닝 인천 편집장으로 걸었던 유동현 전 편집장의 색깔이 입혀 있다.
유 전 편집장이 지난달 굿모닝 인천을 내려놨다.
1997년 3월7일, 인천의 아침에 걸맞은 책을 만들기에 애썼던 유 전 편집장이 굿모닝 인천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다.
그는 "한 일간지 1면에 큼지막한 구인 광고를 접한 게 250여호를 발행하고 떠난 굿모닝 인천과 인연의 시작"이라며 "21년 전 인천의 광고 카피인 서쪽에서 해가 뜨는 인천을 차용해 굿모닝 인천이란 명칭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동구 송현동에서 나고 자랐다. 중학교를 남구(남중)에서 다녔고 고등학교 3년 중구(제물포고)를 누볐다.

모두가 가난하고 부족했던 시절, 집에 없던 책의 목마름은 친구 집을 찾아 배를 깔고 누워 해갈했다. 벽면 가득한 책이 한 권씩 머리 속에 쌓였고 가슴에는 문학의 풍성함이 더해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4대문 한 가운데로 직장을 다녔다. 가슴의 답답함, 그 때 북구(옛 부평·계양·서구)에서 출·퇴근하며 인천을 놓지 않았지만 직장을 향하는 발길은 늘 무거웠다.
유 전 편집장은 "황해도 출신이신 실향민 부모님이 송현동에 터를 잡으셨다. 주변에는 공장이 있었고 옆 동네에는 기찻길이 있고 위로는 판잣집이 줄지어 있었다"며 "동네에서 조금 나가면 화수부두를 만났고 염전까지, 어릴 적 다양한 공간에서 놀았다"고 말했다. 그는 "잡지사 편집장으로 근무하다보니 지방 출장이 잦았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며 이러면 안 되겠다. 인천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동경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막상 굿모닝 인천 편집장이 됐지만 '인천'을 알지 못했다. 당시 인천고를 다니던 형에게 학교 교지인 '미추홀'의 뜻을 물었고, 그게 유 전 편집장의 인천 지식 전부였다.
인천을 배우기로 마음먹고 인천시사를 읽었다. 세 번 읽으니 인천이 보였고, 그간 인천에서 살았던 삶의 궤적과 어릴 적 송현동 주변을 뛰놀던 기억이 더해지며 진정한 인천이 궁금했다. 또 20년 전 시청 3층 어느 구석 방 시사편찬위원회 사무실에서 우연찮게 찾은 귀한 인천의 옛 책까지, 유 전 편집장의 인천 찾기는 우연과 필연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유 전 편집장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인천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한반도 역사의 한길에 놓인 인천에 터를 잡은 주민에게 더 애착이 갔다. 그래서 '골목'에서 인천의 냄새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반질거리는 기름기가 입힌 근대 개항 인천이 아닌 땀내 젖은 아낙의 숨찬 노동의 한숨에서 인천을 발견했다.

유 전 편집장은 "인천 골목길을 참 많이 걸었다. 똑같은 골목길을 20번 이상씩 찾았고 변하는 모습에 조급함을 느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었고 계속 골목길을 찍고 또 찍으며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했다.
사연이 많은 재능대 밑, 십정동 언저리, 꾸불한 송림동 길, 아파트가 점령한 용마루. 어느 골목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게 곧 인천이고 그 속에서 인천이 자랐기 때문이다.
그가 강하게 끌린 취재 현장도 우리가 잊었던 쉼표 같은 인천이다.
수년 전 남동구 고잔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를 만났다. 오이도와 송도를 사이에 둔 인천이 잊었던 갯벌에서 조개를 줍던 할머니를 좇았다. 오이도의 공장 굴뚝과 송도의 화려한 도시 경관이 갯벌과 동거하던 곳, 할머니들은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수 시간 노동하며 그 속에서 홀로 식사마저 해결했다. 셔터를 누르자 할머니와 오이도, 송도가 대조를 이뤘다.

인천이 잊었던 고향을 찾은 듯 그 내용이 실린 굿모닝 인천을 받아본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또 바다라는 인식이 희미해진 화수부두에서 망치에 의지해 나무로 낚싯배를 만들던 노인을 만났을 때는 인천의 정체성이 더해지며 인천 삶을 돌아보게 했다.
시정지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인천을 찾던 굿모닝 인천의 가치, 유 전 편집장이 담으려 했던 '진짜 인천'이 그렇게 글과 사진이 돼 시민과 호흡하고 있다.
21년을 함께한 굿모닝 인천과 지난달 작별한 유 전 편집장의 다음 발길은 어딜까. 묻지 않았지만 느껴진다. 유 전 편집장의 발길은 다시 인천 속 골목을 향할 테고 그 손에 올려진 카메라는 잊거나 외면했던 인천의 삶이 담길 테다.

유 전 편집장은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단순한 철학 속에서 동인천을 담고, 인천 곳곳의 골목길을 책으로 엮었다.
유 전 편집장은 "가슴에 담았지만 실천하지 못한 인천 해안길 순례를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인천은 결국 바다이다. 공항이 있지만 인천의 모든 것은 바다에서 나온다"고 언급했다. 또 중구 근대에서만 돌던 인천 찾기를 '이제 홍예문을 넘자'는 기치로 인천을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미추홀도서관에서 주간인천이라는 귀한 신문을 정리하고 있다"며 "6·25 전쟁 이후 내용이 빈약한 인천의 모습을 끄집어 내겠다"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유동현 전 굿모닝 인천 편집장]
유동현 전 굿모닝 인천 편집장은 인천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인천에 의지해 삶을 잇고 있다. 동구 송현초와 인천남중, 제물포고를 졸업한 후 경희대에서 서어서문학(스페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월간 '리크루트'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1997년부터 지난달까지 21년을 굿모닝 인천을 만들었다. 시 홍보콘텐츠팀장을 겸임했지만, 인천은 그가 굿모닝 인천 편집장으로 남길 바란다.
그의 손을 거쳐간 저서는 때깔 번듯한 인천이 아닌 누런 흑백의 잊힌 인천이다. '골목길에 바투 서다'(2008년), '골목 살아지다'(2013년)를 통해 인천 골목 곳곳을 기록했고, 2015년에는 화려한 역사 속 뒤안길에 들어섰지만 부활을 꿈꾸는 '동인천 잊다 있다'를 썼다.
'기억을 더듬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그 공간의 시간을 채집하다'는 권두언으로 시작되는 2018년 4월 작 '몽땅 인천'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굿모닝 인천 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사진과 짧지만 강렬한 소감으로 묶인 책이다. 그는 책 소개에 "마지막 책장을 넘긴 독자가 '인천에 의미 없는 골목은 없다. 인천에 아름답지 않은 골목은 없다'라는 독백이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소박한 바람이지만 그처럼 인천 곳곳을 사랑하는 인천인도 드물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속내이다.

/이주영·곽안나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