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경 에이스 트리플 컨설팅 대표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선 나만의 차별적 기술이 필요하다. 차별적 기술이 성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기술의 변화는 빠르고 다른 분야의 기술이 새로운 용도를 발견해 내 시장의 경쟁자로 출현하기도 한다.

기술은 지속적으로 혁신할 학습능력을 갖추고서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기술이란 무엇인가? 과학과는 구별된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연구한다. 기술은 과학이론을 활용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의 우주항공 기술의 초석을 쌓은 항공 공학자 Theodore von Karman은 이렇게 말했다. "Scientist discover the world that exists: engineers create the world that never was" 기술이 새로운 것을 만들지만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 새로운 것만으론 부족하다. 고객을 행복하게 하거나 고객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필자가 만든 제품 중에 컴퓨터 찬송가 반주기가 있었다. 버튼으로 4가지 악기(피아노,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 전자오르간) 중 하나를 선택하고 찬송가 번호와 시작버튼을 누르면 해당 찬송가가 자동으로 연주되었다. 기독교 신자들의 소모임에서 찬송을 할 때 꼭 필요한 제품 같았다. 기술을 도입하여 만들고 미국에 수출까지 했으나 딱 한번으로 끝났다.

인켈 오디오 세트의 수출가격이 100달러이던 시절에 찬송가 반주기 가격은 300달러였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부흥회에 기부할 참신한 제품을 찾다가 구매하였다. 국내 판매가격은 30만원이었다. 제품을 보는 사람들은 극찬을 했으나 사지는 않았다. 30만원을 내고 제품을 사야할 이유가 절박하지 않은 제품이었다.
컴퓨터가 미리 저장되어 있는 악기의 음색 주파수에 맞춰 음표의 길이와 높낮이를 조합해 내는 합성 연주는 반주자가 직접 연주하는 아날로그 연주에 못 미쳤다. 한마디로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제품이었다.

보드를 원칩으로 만들면 100달러짜리로 만들 수 있겠지만 칩을 만드는 최소수량은 10만개 단위여서 시도하기 어려웠다. 가격은 높고 품질은 부족한 신제품은 얼리어답터의 호기심만 자극했다. 도입한 찬송가 반주기 기술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일본의 가라오께가 국내에 도입되기 전이었다. 컴퓨터가 정확히 만들어내는 박자를 따라잡는 문제와 음향의 품질을 높이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도입한 기술이어서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할 역량이 부족했다. 반주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로 돌아와 담배자판기를 만들었다. 양담배회사가 국내에 본격 진출할 시기였다.
담배인삼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담배유통시장에서 유통망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담배회사들은 광고와 판매를 같이 담당할 유통매체로 자판기를 선택했다. 담배인삼공사도 외산담배와 경쟁하기 위해 담배자판기를 사야 했다.
담배자판기의 신시장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부천 시민단체의 담배자판기 철거운동이 전개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담배자판기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가 제정되었고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담배자판기 구매 예산은 동결되고 시장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신시장 개척의 희망이던 담배자판기는 졸지에 애물단지로 되고 말았다. 자동화 기계는 도입단계에서 기계로부터 피해를 받는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에 직면한다.

도덕적 명분이 적은 제품은 사회단체나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창업가에겐 견뎌야 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다.
내 핵심역량이 고객의 욕구나 문제를 해결할 때 사업의 기회가 생긴다. 많은 경우 고객의 전정한 욕구를 모르거나 해결할 핵심역량이 부족하다. 문제를 정확히 알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은 아웃소싱을 할 수 있다.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치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창업가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깨우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다행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