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월드컵 시즌이다. 축구라곤 해본 적도, 구경삼아 경기장 찾은 적도 없는 필자조차 늦은 밤 TV 화면을 기웃거린다. 90분 웃도는 시간, 화면은 22명 건장한 사내들의 거칠고 빠른 몸짓으로 가득하다. 무찌르려는 자들과 막는 자들이 뒤엉키는 장면은 액션영화 못잖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지구촌 최고의 인기 스포츠답다.

덩달아 축구에 관한 명언도 꽤 많다. 이를 테면 '공은 둥글다'는 것이다. 축구 경기가 갖는 의외성에서 비롯된 건데, 그러니 '절대강자'는 없다는 얘기다. 전설적 선수 베켄바워의 "강한 팀이 이긴다기보다 이기는 팀이 강한 팀"이란 말, 차범근의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없다"는 말 모두 같은 맥락이다.
실제 월드컵이 시작되자마자 '이변(異變)'이 속출하는데, 독일이 멕시코에 패하고 브라질이 스위스와 비긴 것만 봐도 그렇다. 이쯤 되면 승부는 천우신조(天佑神助)에 달린 건가 싶다. 축구의 의외성은 공이 둥글기 때문은 아니다. 거의 모든 구기(球技) 종목은 둥근 공을 쓰니 말이다. 그리 보면 축구의 의외성은 '손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일찌감치 직립보행을 한 호모사피엔스가 가장 잘 쓰는 게 손인데, 그 손을 못 쓰게 한 경기가 축구다. 그러니 '손 쓸 수 없는' 선수들은 머리와 몸통, 발을 손처럼 쓸 수 있게 기량을 가다듬어야 한다. 특히 발은 가장 많이 쓰는 강력한 무기다. 하나,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부위여서 다른 의미의 의외성을 연출한다. 이른바 '똥볼', '뻥축구' 등이 그거다. 게다가 발은 경기 내내 10㎞ 남짓 그라운드를 누벼야 하니 피로도가 가장 높다.

월드컵이 열기를 더 해가는 가운데 한국도 첫 상대 스웨덴을 맞아 격렬하게 싸웠다. 결과는 1-0 패에 유효 슈팅 0. 흔하다는 이변은 없었다. FIFA랭킹 57위와 24위의 거리는 이변이 끼어들기엔 너무 멀었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1위 독일을 꺾은 15위 멕시코. 산 넘어 산이다. 멕시코야말로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없다"는 걸 보여준 셈인데,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더위와 높은 습도로 잠들기 어려운 밤. 필자조차 종종 TV 앞에 앉는 건 그 꿈이 현실로 되는 이변을 기대하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