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서울 댄스컬렉션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 '시간은 무게다'. /사진제공=댄스컴퍼니 명
춤은 몸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도구를 이용하는 예술이다. 춤추는 젊은 남자, 안무가 최명현(35). 그는 16년째 춤추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공감대를 몸짓언어로 풀어낸다.

연습실 월세 독촉 전화를 받을 만큼 작품 제작비 조달에 쪼들린 삶을 살지만 안무가의 길을 행복하게 받아 들인다. 굶어 죽어도 그 직업을 내려 놓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객들에게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인식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선 어쩜, 예술가의 삶이 그렇듯 그도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전국무용예술제에 참가할 인천지역 대표 무용단을 뽑는 경연을 앞두고 리허설 중인 안무가 최명현을 지난 6월15일 부평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 춤바람을 공유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2010년 5월 무용단체 '댄스컴퍼니 명(明)'을 창단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춤의 세계를 펼쳐보기 위해서다. 작품 하나를 올릴 때 보통 2~3개월 연습하는데, 단원들에게 자신의 색깔과 움직임을 이해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자신의 움직임을 체화하고, 습득한 고정된 단원 무용수가 필요했다. 무용예술가를 꿈꾸는 젊은 춤꾼들이 자기무용단, 자기 선생의 무용그룹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풍토가 싫기도 했을 것이다.

그냥 무난한 춤꾼이 아니라 '무용현실'에 대한 작은 개혁을 실천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관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의 발명에 따라 변화하는 인식의 흐름을 몸짓언어, 춤으로 이미지한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인권과 평등에 대한 오랜 화두를 통해 '인식의 변화된 과정'에 집중하고 앞으로 야기될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인류애를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용단체들은 보통 안무가 1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댄스컴퍼니 명(明)은 모두가 안무가이고 모두가 단원으로 참여하는 집단창작시스템인 집단운영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집단창작은 안무가가 작품을 이끌어 가는 형태에서 벗어나 무용수도 창작에 관여하도록 하는 열린 방식이다. 댄스컴퍼니 명의 운영방침이 바뀐 것이다.

"1인 안무가와 다수의 무용수 단원들로 구성된 1인 체제 시스템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단원들이 함께 창작작업을 공유하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동료 단원들로 구성했습니다."

8년 동안 무대에 올린 단일 안무 작품만 40여편이 될 정도로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 아이템은 2, 3년씩 묵힌 '아이디어 장독대'에서 하나씩 꺼내온다.

작품 주제도 초창기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했다면, 요즘에는 사회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선뜻 사회적 문제를 들고 나오지 못한 이유는 시각의 편향성과 보편성을 띠지 못한 작품경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몸으로 하고 싶은 말

"어찌보면 예술형태, 흥, 움직임, 색감적인 공간에 흥미를 갖고 춤을 추는 것은 어린시절 체득한 정서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성장해서 안무가로서 평생 춤을 출 수 있다면, 스트리트 댄스보다는 순수예술, 무용을 평생직업으로 삼아 계속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최명현 안무가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판소리나 사물놀이, 민요 등 국악을 자주 접했다. 그리고 그 때 그런 전통음악을 좋아 했다. 결국, 어릴적 살았던 곳의 정서와 분위기,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춤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다.

"현대무용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도라 던컨 이후 포스트 모던 댄스까지 사조가 변화했죠. 마사 그레이엄 메소드(method)처럼 무용에도 그 사람이 만든 포로세스의 언어가 있다. 각자의 무용수 이름을 딴 메소드, 움직임 언어를 만들수 있다는 것, 저만의 언어를 창조할 수 있는 게 무용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의 언어, 춤은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 준다. 그는 몸으로 춤을 추는 순간 불꽃처럼 사라지는 아름다운 몸짓 언어의 창조자다. 찰나의 그 지점이 그를 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관객들이 '그게 최명현의 춤이야'라면서 기억해 주길 기대한다.

# 남자가 무슨 무용이냐?

최명현 안무가는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서울로 진학해 대학(한양대학교 무용과)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트리트댄스 동아리(DMC) 활동을 했던 그는 고3 수능을 마치고 집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TV로 시청하다가 무용수보다는 안무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스트리트댄스는 관객들에게 단면적으로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작이나 대형을 구성하죠. 그런데, 그날 그 TV속 남자 솔로 무용수는 뒤돌아 서서 춤을 추는거예요. 뒤에서 대각선 조명으로 빛을 치면 실루엣만 보이는데, 그 조명효과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현대무용이 일렉트로닉컬한 비트가 강력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거였다면, 그 안무자는 뒤돌아 서서 실루엣 조명과 불경을 읊는 사운드로 춤을 추는거예요."

'어, 춤을 저렇게 뒤로 돌아서 춰도 되는구나.' 기존 생각이 깨졌다. 춤을 추는 사람보다 그걸 만드는 안무가를 꿈꾸고 무용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무용과는 안무가보다는 무용수로서 실기 중심 교육과정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자'라며 대학을 졸업하고 조명과 무대 디자인을 배웠다. 무대에서 디자인이나 큐타임을 정확히 알고 디렉션을 줄 수 있어서 조명디자인을 안다는 것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에겐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사회적 인식, 그 첫번째는 바로 부모님이었다. 다 큰 아들이 무용을 하고 싶다고 하자 '남자가 무슨 무용이냐, 남부끄럽다'며 집안에서 크게 반대했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행복론'으로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행복하고 싶다고 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때 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부모님을 원망할 것 같다고. 그렇지만 제가 선택한 길을 갔을 땐, 실패해도 부모님 원망은 하지 않겠다.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을 할거니까 믿어달라고 해서 승낙을 얻었죠."

춤추는 아들을 못미더워 하는 시골 부모님을 생각하면, 제일 마음에 밟히는 아픈 생채기로 남아있다고 한다.

# 세상에 관한 탐구생활

'사물에는 과연 생명력이 있을까?' 요즘 그의 가장 큰 화두다. 12월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는 작품 '사물과 인간사이'의 안무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상 생활에서 사물의 다양한 소리에 대해 움직임과 관계성을 찾아가는 작업을 해 왔다. 오브제 사용을 통한 다양한 실험에서 나타난 현상과 행위를 통해 그 같은 의문을 품고, 이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16년간 그의 작품은 대부분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많지만 결국 희망의 메시지를 말한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인간은 성숙을 해야 하는가. 두가지 큰 맥락으로 접근하다보니, 사회구성원 안에서 꼭 필요한 덕목인 인류애를 잃지말자는 것이 작품에 주를 이루게 됐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추세와, 성평등 문제나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평등, 환경문제 등에 대한 인식들이 변화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제 작품의 방향성 입니다."

# '발화된 몸', 해외 순회

댄스컴퍼니 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명성이 더 높다. 오랜 연구와 땀흘린 연습, 노력 끝에 체화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 5월 일본에서 열린 사이타마 인터내셔널 안무경연대회에서 '발화된 몸'으로 46개 팀 중 대상을 거머줬다. 앞서 2월에는 일본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페스티벌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시간은 무게다'라는 작품으로 서울 댄스컬렉션 수상작 선정, 2012년 5월 '바다로 갑니다-두번째 이야기:상처'로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 최우수 안무가로 선정됐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해외 초청 공연에 나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역수입된다. 연말에 멕시코와 중국 투어 일정이 잡혀있고, 내년에는 '발화된 몸'을 가지고 프랑스 등 해외 순회 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무용이란 동작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고 이해하기보다는 전체 스토리 전개에서 파편들이 모여서 형성한 이미지와 희로애락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라고 관람 팁을 들려줬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