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누나들이랑 하는 보드게임이 제일 재미있어요"
▲ 교하도서관 1층 로비에서 서현군과 청소년 자원봉사자 조준혁군이 함께 보드게임 차오차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파주교하도서관


'날아라 슈퍼보드' 프로그램 운영
테이블 준비부터 게임 설명까지
청소년들 봉사자로 적극적 참여

보드게임, 여러 명의 참여자가 둘러앉아 일정한 규칙으로 우열을 가리는 놀이다. 경쟁을 하는 만큼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용한 도서관에서는 보드게임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역사 등 사회과학을 응용한 게임은 물론 순수하게 게임만을 즐기기도 한다. 이중 5년간 청소년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보드게임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파주교하도서관'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왜 자꾸 꽝만 나와요?"

지난 9일 교하도서관 1층 로비에서 보드게임을 하던 서현(5)군이 꺄르르 웃었다. 해맑게 웃는 서현 군 앞에는 함께 온 할아버지 서한웅(66)씨와 청소년 자원봉사자 조준혁(15)군이 앉아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게임은 '차오차오', 사실 다섯 살 아이가 하기 쉽지 않은 게임이다.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여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 도우미 조군이 주사위를 던져 각자의 말을 경주하는 것으로 규칙을 바꿨다. 그는 "현이가 꼭 이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 쉽게 바꾼 것"이라며 "일반적으로는 게임에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많이 오곤 한다"고 말했다.

교하도서관 보드게임 프로그램 '날아라 슈퍼보드'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다. 2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봉사자들은 20분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로비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접수대 앞에 보드게임을 차곡차곡 쌓는다. 의자가 하나둘 늘 때마다 로비를 서성이는 아이들도 늘어난다. 몇몇 아이들은 접수대 앞에서 미리 게임을 고르기도 한다. 그렇게 2시가 되면 참가자들은 명단에 개인정보를 기입한 다음 보드게임을 골라 빈 테이블로 간다. 테이블마다 노랑 조끼를 입은 청소년들 한두 명씩 앉아 이들을 맞이한다. 안내·게임 도우미를 겸하는 봉사자들이다. 올해 활동하는 청소년 수만 17명, 이들은 매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봉사단으로 참여한다. 청소년 모임을 담당하는 김미선 사서는 "접수 날마다 새벽부터 신청자들이 도서관 앞에 줄을 서곤 했다"며 "올해는 인터넷 접수로 바꿔 볼 수 없지만, 당시엔 번호표도 나눠주는 등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봉사단들은 10종이 넘는 보드게임 규칙을 모조리 익혀야만 원활히 활동할 수 있다. 그렇게 매달 1~2회씩 보드게임 도우미로 1년을 보내면 도서관 내 '보드게임 동아리'에 들어갈 자격을 갖게 된다. 이 동아리는 프로그램 전반적인 운영을 맡을 뿐 아니라 일 년에 두 번씩 진행하는 대회를 주최하는 역할도 한다.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박영준(15)군은 "가족들이 함께 참여 가능한 게임 2개를 정해 토너먼트 대회를 연다"며 "게임별로 10팀씩 참여하는데 경쟁 열기가 꽤 뜨거워, 때론 우는 참가자도 생기곤 한다"고 전했다.

교하도서관에서 보드게임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13년이다. 첫 시작은 지역 내 연계 프로그램을 고민하면서부터다. 지역 내 본사를 둔 보드게임 회사와 연이 닿았고 비교적 저렴하게 게임들을 구매했다. 회사에서는 직원을 파견해 직접 게임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지역 내 청소년들의 열렬한 참여로 지금까지 쭉 이어져왔다.

현재 교하도서관에서 가지고 있는 보드게임 가짓수는 약 11종. 많지는 않으나 인기 있는 게임들을 구비해 이용자들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행사 때마다 참여하는 평균 참여자 수는 50명 정도. 2시간 동안이라고 생각하면 꽤 많은 인원이다. 거기다 봉사자·동아리 청소년 30여명까지 함께하다 보니, 행사날이면 로비는 늘 시끌벅적하다. 청소년 동아리 업무를 담당하는 김미선 사서는 "너도나도 모여 앉아 게임을 하다 보면 화를 내거나 우는 아이들도 있다"며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게임하고 나면 활동가들 모두 지쳐 집에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즐겁기만 하다는 반응이다. 동아리에 참여 중인 박지수(17)양은 "무엇보다 보드게임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벌써 4년 넘게 동아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친 후 응용해 게임하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이렇게 함께 둘러앉아 노는 것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은희 수습기자 haru@incheonilbo.com


▲ 양주꿈나무도서관의 만화·웹툰 특화자료실에 비치된 보드게임들. /사진제공=양주꿈나무도서관

도서관, 청소년 문화 아지트로 변신
보드게임 선의의 경쟁 즐기고 도우미로 진행 돕기도

2000년대 초 미국·유럽 보드게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시장 역시 급성장했다. 이 바람을 타고 도서관 역시 다양한 보드게임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금도 방학 때마다 도서관에서는 '역사 보드게임 놀이', '인물사 보드게임' 등의 수업을 연다. 하지만 보드게임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건 쉽지 않다. 교육적 목적을 지향할수록 어린이·청소년 등 이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은 총서 열아홉번째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을 발간하고, 국내·외 도서관 보드게임 활용 사례를 선별해 소개했다. 여기서는 '보드게임'을 "팀워크에 기반한 놀이"로 규정하고 "규칙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선의의 경쟁의식으로 동기·흥미를 유발시켜 자발적인 참여도를 높이"는 도구로 소개한다. 저자로 참여한 정유화 구리토평중학교 사서교사는 "청소년들이 방과 후에 갈 수 있는 공간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청소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파주에 있는 교하도서관·중앙도서관은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몇 년간 꾸준히 지역 청소년들의 열렬한 참여와 봉사활동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민영 교하도서관 담당 사서는 "5년간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청소년 활동가들"이라며 "게임 도우미로 적절히 참여해, 혼자 오든 여러 명이 오든 게임을 할 수 있게 도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 역시 청소년 봉사자들의 역할을 크게 평가한다. 7살 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가한 장윤경(43) 씨는 "아들이 평소 보드게임을 좋아하지만 여건상 집에서 하기 쉽지 않다"며 "도서관에 오면 언니·오빠들이 함께 즐겨주니 부담 없이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청소년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하는 특화 도서관도 생기고 있다. 양주에 있는 꿈나무도서관은 지난 2월 만화책 1만여권을 볼 수 있는 만화·웹툰 특화자료실을 열었다. 이 자료실 한 쪽 면에는 보드게임 35종도 진열돼있어, 이용자들이 언제든 전용 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 6월 현재 주말 기준 자료실을 찾는 이용자 수는 1일 평균 100여명이다. 이 가운데 보드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40명가량이다. 김유리 사서는 "청소년과 가족들의 문화아지트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며 "주말에 게임을 하러 함께 방문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희 수습기자 haru@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