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여름이다. 아직 6월인데 불볕더위다. 매우 도발적이다. 자유공원 응봉산 자락에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대가 세워진 이래, 수십 차례 정점을 치달았던 전설 같은 기록들이 또 갈아치워질 전망이다. 어차피 기록은 깨어지기 마련이다.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록되는 순간부터 영원의 범주에 진입하는 모순구조를 갖는 것은 죄다 사람의 일이고 거기엔 언제나 개연성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의 시간을 거쳐 이름 하나 낚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햇볕 따갑게 내리쬐는 아침나절이다. 장황한 너스레에 자칫 당혹스러웠다면, 불덩이 같은 선거를 치른 후유증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날은 뭣 좀 시원한 걸 찾고 싶다.

개조한 트럭에 연단을 꾸며 일방적으로 거리에 토해내는 폭발음 같은 확성기소리에 멍멍해진 귀때기를 위로하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가뜩이나 회색빛 감도는 데다 '이부망천'이란 도시평을 받아온 길거리와 골목에 나붙은 얼룩덜룩 플래카드와 벽보에 안압이 치솟았던 도시민의 눈에 청량감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시성장을 위한 이런 난리굿은 꼭 치러져야 하고 위정자들 또한 민심의 체에 한번 쯤 걸러져 내외적 성장을 도모하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라는 심정이 덩달아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침이 마르도록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선거전을 치른 모든 후보와 그 관련자들에게 '아이스께끼' 하나씩 선사하고 싶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중앙동 모던 사진관 아래층에 철컥거리는 금속성 소리 틈새로 매끄러운 인어처럼 쌓이는 '오랑쥬' 맛 아이스께끼가 여전히 판매된다면, 300만 인천시민에게 한 턱 쏘고 싶은 마음이 정녕 있었다. 설령, 인천 바다를 바라보며 '부즐없이 오랑쥬 껍질 씹는 시름(부질없이 오렌지 껍질 씹는/ 슬픈 인상화 -정지용)'을 갖게 되었든, '해풍 속에 꿈틀거리는 미래 같은 것에 방황(인천항-조병화)'을 했든 간에 선거를 치른 시민 모두의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과는 다수 시민의 염원대로 이루어졌다. 시민이란 독자적 유기체들의 합성과정이 일궈낸 변화는 앞으로 인천이라는 총체성을 더욱 진보시킬 수 있는 발판을 거듭 엮어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선거였다. 다수의 결정행위와 그 결과가 모든 정황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표심에 따라 세상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란다는 마음에 방점을 찍어본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아이스께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감이란 세월의 더께에 묻힌 추억을 수확케 하는 엄연한 질료다. 배움에 주려 월사금 걱정 덜려고 뙤약볕 길거리로 나선 고학생들에겐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었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부모 세대에겐 물과 주스가루, 소금과 설탕 또는 사카린, 그리고 간단한 용기와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어 큰 돈 들이지 않고 제 식구 먹여 살릴 수 있던 방편이었다. 어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순식간에 고물로 되어 아이스께끼와 교환되기도 하였다. 새 것일수록 아이스께끼 막대 숫자는 더 많아졌다. 이 교묘했을 거래는 시차를 뛰어넘어 그냥 당시 해프닝이었고, 물만 뿌려도 씻기는 어느 더운 여름날 먼지 같은 기억으로 추억되지만, 1960~70년대를 거친 세대들에겐 '웃픈' 현실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 역시 필연이라는 외투를 입은 우연, 또는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같은 미래를 통과하려는 또 하나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스께끼는 우연히 만들어진 창조물이었다. 실수로 탄생했지만 우리 곁에서 가벼운 먹을거리로서 이처럼 장수해온 것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이 비열(非熱)한 열정은 멀리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노예를 부려 얼음을 캐내 과일과 섞어 먹었던 것은 물론, 마르코 폴로 또한 쿠빌라이 칸에게 우리가 흔히 샤베트라 부르는 셔벗(Sorbet)을 선물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마침내 1905년 미국 오클랜드에 사는 프랭크 에퍼슨(Frank Epperson)이라는 열한 살짜리 어린이의 실수로 빚어진 산물이 오늘날 얼음막대 과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소규모 가내 수공에 맛 들린 소년의 눈에는 여전히 변함없이 롯데삼강 하드와 고무줄로 묶어 만든 즉석 아이스께끼에 대해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다.

더우면 시원한 것이 먹고 싶고 날이 차지면 따끈한 걸 찾게 되는 게 인간 본연이다. 어리석음도 실수도, 하물며 인생을 걸 만큼 치열했을 6.13선거도 따지고 보면 영원하지 않은 존재들이 영원하려고 집단 지능을 이용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더운 여름날, 빳빳하게 서 있는 아이스께끼가 입속에서 사라지는 걸 허망하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여직 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