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나사의 터진 밑구멍 속으로
한 입씩 옴찔옴찔 무는 탱탱한 질 속으로
빈틈없이 삽입해 들어간
숫나사의
성난 살 한 토막

폐품이 된 이앙기에서 쏟아져 나온
나사 한 쌍
외설한 체위 들킨 채 날흙 속에서 그대로 하고 있다
둘레에는
정액을 쏟듯 흘린
제비꽃 몇 방울


봄날은 갔으나, 1년 내내 봄날인 것처럼 살고픈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홍신선의 '봄날'은 감정 없는 녹슨 사물에게도 삶의 봄날이 있어 '날흙 속에서 그대로 하고', 제비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하물며 단 일분일초도 감정의 부유가 멈추지 않는 인간에게라면 말해 무엇하랴.
누구에게나 한순간 죽고못사는 사랑의 순간은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과거가 되고, 몸도 늙고 추억도 늙는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날까지 '꽃 몇 방울' 피워올리던 '날흙'의 기억을 눈물겹게 붙들고 살아간다. 마치 그 순간이 삶의 존재 이유라도 된다는 듯이….
나는 지천명에 이르러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이제 절망의 냉기를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왔다./ 언제까지 넌 끝나버린 사랑을 회억하며 미라의 모습으로 견딜 것이냐./ 단단한 기둥을 둥글게 말아쥐고 차디찬 정수를 길어 올리던 그날,/ 뜨겁던 사랑은 천년의 고독으로 엉겨 붙었다./ 펌프질의 한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라./ 어느 소각로 주물공장에서 서럽지 않을 꼿꼿함으로 다시 환생할 녹슨 펌프야….' (시 '녹슨 펌프' 중)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사랑을 추구한다. 아이도 사랑을 갈구하고, 노인도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은 현실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상상 속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펌프가 녹슬었다고 차가운 정수를 길어올리지 못한다면, 나사가 녹슬었다고 제비꽃을 피워내지 못한다면, 우리 남은 생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권영준 시인·인천 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