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어쩌다보니 온갖 통신기기를 두루 섭렵했다. 벽돌만 한 전화기를 잠시 들고 다닌 게 80년대 후반. 비슷한 때 '삐삐'라는 무선호출기도 잠시 썼다. 스마트폰의 전신이랄 수 있는 PDA폰도 써봤다. '손 안의 컴퓨터'라는 뜻에서 팜톱(Palmtop)이라고도 했다. 피처폰(Feature phone)이라 불리는 기기를 만난 건 90년대. 당시 세계 휴대전화 점유율 1위 노키아 제품이었다. 이후 모토롤라의 스타텍, 애니콜, LG폰 등을 한동안 두루 거쳤다.

스마트폰 시대는 2010년 모토롤라의 '모토로이'와 함께 왔다. 국내 최초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이다. 예약 구매했는데, 조건은 2년 의무사용 약정. 당장 큰 부담 없으니 일단 질렀다. 이후 약정 끝날 때마다 기기는 달라졌다. 스마트폰에 더 해 태블릿PC도 마련했다. 이로써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정보통신기기 종합세트가 완성됐다.

정보기술 진화는 그 뒤에도 속도를 더했다. 반면, 상품 수명은 이에 반비례해 짧아졌다. 낡거나 고장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기능에 더 빠르고 더 가벼워진 새 것들은 멀쩡한 헌 것들을 밀어냈다. 핸드폰도 '피처'와 '스마트'로 나뉘었다. 전자는 시장에서 쫓겨났고, 빈자리는 후자의 영토가 됐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장에서 이른바 '신상(新商)'의 권위는 엄중한지라, 그 앞에서 소비자는 '약정노예'이길 감수했다.

눈부시게 진화하는 기기 덕분일까, 스마트한 기계들은 몸의 일부가 됐다. 잠시라도 안 보이면 화이트아웃(whiteout) 상황이 된다. 기계는 스마트해지는 반면 사람은 아둔해지는 탓이다. 덩달아 기기 의존도는 날로 높아진다. 쓸 만한 정보는 되도록 기기에 가둬둔다. 각종 저장장치들은 온갖 문서와 영상 파일들로 가득하다. 언제고 쓰겠다지만 쓰 잘 곳 없는 것들, 디지털쓰레기에 다름 아니다.
일본의 지성 사사키 아타루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다들 명령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는다. "정보를 모은다는 건 명령을 모으는 일"이라는 것. 뼈아픈 지적이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도 누군가의 명령에 귀 기울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다 디지털 익명성에 가려진 누군가의 노예로 영락(零落)하는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