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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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가 다른 나라나 지역을 돕는 이유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 동기, 정치·외교적 동기, 진보된 상업주의, 상호의존의 인식 등이 거론된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선한 마음을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인도주의적 동기이다.

한편, 강대국은 국가안보이익 차원에서 전략적 원조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면 선진국은 자국의 상품을 수출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시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제사회는 한 국가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제 남북관계는 상호의존관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서 이기도 하다.

북유럽 강소국들은 주로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미국은 정치·외교적 동기로, 일본은 상업주의적 이유로 공적개발원조(ODA)를 실시하는 경향을 띤다. 빠른 속도로 원조규모를 늘려가는 중국의 경우는 정치·외교적 동기와 상업주의적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원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최대 원조 공여국이있던 일본 ODA의 특색은 이른바 원조, 무역, 투자의 삼위일체형으로 일컬어진다. 파트너 국가의 자조노력 중시, 경제인프라 구축 위주, 윈윈협력 등을 구체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일본형 ODA 부작용에 대한 적지 않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동남아시아 경제성장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경험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지원의 문제는 개발협력을 중시하는 일본의 외교가 피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 ODA에 의한 한국과 동남아에서의 성공체험은 비핵화 실현 후 북한 개발협력에 매우 중요한 경험과 모델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북한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성을 고려할 때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프런티어 마켓'인 만큼 상업주의적 동기도 충분하다.

북·미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시간표를 둘러싸고 결정적 성과가 도출된다면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완화를 통해 한·중·일 3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의 길이 열리고 한국의 경협, 중국의 인프라 투자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일본의 ODA 자금 지원도 검토될 수 있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하면 미국도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면 청구권 자금도 제공될 것이다. 나아가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 조달도 가능해지고 민간 투자도 활성화할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북·미 협상의 진전은 국내 정치의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의 관여와 중재를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 참여함으로써 '재팬 패싱' 우려를 불식하고 외교적 존재감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북한이라는 개발협력의 프런티어에서 일본 삼위일체형 개발협력 방식의 새로운 실험을 전개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맞이하는 것이다. 일본이 청구권 자금으로 북한에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상협력자금은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종잣돈이 될 것이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 언급됐던 북한이 받을 수 있는 무상자금협력 규모는 최소 100억 달러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변수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아베 내각의 입장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실현 후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 미국은 북한에 많은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이 도와줄 것이라고 거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아베 내각은 "북일 평양선언에 기초해 일본인 납치와 북한 핵·미사일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지향한다는 입장은 변함 없다"고 밝혔다. 북일 평양선언은 북일 국교정상화가 실현되면 경제협력을 한다는 것이며, 일본인 납치문제와 핵·미사일 해결 없이는 국교를 정상화할 수 없고, 경제협력을 실시할 용의도 없다는 것이 아베 내각의 입장이다.
그동안 일본과 북한은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불신과 반목을 거듭해 왔다. 향후 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언제 북·일이 마주앉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조속한 귀환과 진상 규명, 납치범 인도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운데, 문제 해결 기준을 어느 선에서 설정할지가 관건이다.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거부감이 팽배한 일본 국내여론까지 설득하려면 북한은 납치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성의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아베 내각은 국내정치공학적 유혹을 뿌리치고 원칙적이고 완고한 입장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한국의 중재 노력, 그리고 미국의 관여 또한 중요하다고 하겠다. 일본형 ODA의 성과를 활용한 북한에 대한 개발협력이 가까운 장래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우선은 납치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당사국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