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 강화8경
▲ 연미정은 강화8경의 하나로 강화 앞바다인 염하와 북한 개풍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다. 연미정 정자 양쪽으로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호위병처럼 서 있다. /김진국 논설위원 freebird@incheonilbo.com
北 개풍군 한눈에 보이는 연미정
돌로 쌓은 바다의 관문 갑곶돈대
1871년 격전지 광성보와 초지진
마니산과 사찰 세곳… 낙조 일품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의 호위를 받으며, 연미정은 그렇게 서 있었다. "푸르륵, 지지배배" 아침햇살을 받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노래를 들려줬다.

연미정에 서니 북한 개풍군의 산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됐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땅. 강화대교를 건너 용정리와 옥림리를 건너는 동안에도 2중의 철책선이 완고하게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연미정은 '강화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연미정에 서면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파노라마로 시야에 들어온다. 연미정은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한 물줄기가 이 곳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 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8년까지는 민간인통제구역이었으나 이후 해제돼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옛날엔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리고 '물때'를 기다렸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연미정은 높은 주초석 위에 서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다. 지붕 옆면이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연미정과 더불어 강화도엔 '강화8경'이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강화8경은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스토리텔링과 유적을 품은 훌륭한 관광지이다.

▲갑곶돈대(강화읍 갑룡길 26)

갑곶돈대는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던 돈대다. 밖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관문과 가까워 중요한 돈대이다.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의 북쪽 언덕에 있었다. 지금 사적으로 지정된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은 돈대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 등을 감시하고 대처했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한 무기로 방어를 했다.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는 53개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 가운데 하나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광성보(불은면 덕성리 833)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호국의 성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함포로 광성보를 초토화했다.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은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웠다.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았으나 최신식 무기를 앞세운 미군함대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전사했으나 역사는 조선군이 승리한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미군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 했고,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서 패한 것이다.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초지진(길상면 해안동로 58)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다. 병자호란 이후 서해안 수비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들이 강화도와 강화도 근처로 옮겨온다. 1653년(효종 4)에 남양의 영종진이 인천부 자연도로 옮겨왔다. 영종진이 자연도에 자리 잡으면서 섬의 이름도 영종도로 바뀌었다. 영종진을 남양에서 자연도로 옮긴 것은 자연도가 해상에서 강화도로 진입하는 길목이라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영종도는 강화도를 지키는 1차 방어선의 기능을 했다.

초지진은 1656년(효종 7)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장자평돈대·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1875년(고종 12)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패퇴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를 해코지하면서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정비된 초지돈대 안에는 대포가 전시돼 있다. 돈대 옆 소나무는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 때 맞은 포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마니산(화도면 마니산로 675번길 18)

해발 472.1m의 산이다.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참성단'이 있다. 정상에서 보면 남쪽으로 서해의 여러섬이 보이고 맑은날에는 북쪽으로 개성의 송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은 고려사나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 전한다.

경주의 첨성대처럼 기초는 하늘을 상징해 둥글게 쌓고 단은 땅을 상징, 네모로 쌓아 하원상방형을 이룬다. 삼국유사는 단군은 북한의 묘향산에서 출현해 그 후 평양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고 다음에 기자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보문사(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

바다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 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절이다.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이곳으로 와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칭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했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뤄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돼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이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다.

▲적석사(내가면 고천리 210-3)

고려산 서쪽에 위치한 절이다.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이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다.

▲전등사(길상면 전등사로 37-41)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라 불리기 시작했다.

절 입구에 있는 대조루 밑을 지나들어가면 정면에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만난다. 대웅전 안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판각해 옮겨진 법화경 목판 104매가 있다. 명부전 맞은편 왼쪽 언덕을 약 100m 오르면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터가 복원돼 있다.

강화에는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했다가 1660년 이곳 전등사 경내로 옮겨 1678년이래 실록과 서적을 보관했었다. 보물 제393호 범종은 중국종으로 중국 하남성의 숭명사에서 북송시대(1097), 고려 숙종2년에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 종과는 달리 종머리에 음관이 없고 용머리 주위에는 아름다운 16개의 연잎이 둘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승군 50명이 전투에 참가한 호국 불교의 사찰로 당시 조선수비대장이던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전등사 동문 입구에 세워져 있다. 032-930-3627, 930-3114

/김진국 논설위원 freebird@incheonilbo.com




흥미진진한 역사, 알고 보면 감동이 2배

곳곳 '문화관광해설사' 배치 … 수학여행 땐 투어 해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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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봉 기자 8989king@incheonilbo.com

/인천일보·강화군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