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주말에 좀 먼 곳으로 바람을 쐬고 왔다. 철이 철인지라 지나는 길목마다 선거 현수막이다. 시·군 경계를 넘을 때마다 등장 인물이 바뀌는 것도 재미다. 향토색 물씬한 슬로건도 지방선거답다. '어르신들, 저 냇가에서 멱감던 000이 고향 일 한번 해볼랍니다.' 애교가 넘친다. 방관자가 멀찍이서 바라보는 지방선거는 장날 풍경같다.
▶공약도 가지가지다. 일자리 창출은 약방의 감초다. 이번에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약속한 일자리만도 256만개라지 않는가. 4년만 참으면 그때는 구인난이 올 지도 모른다. 내 고장에 KTX를 끌고 오겠다는 공약도 못지 않다. KTX역을 신설하거나 기존역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애향심의 발로이니 무턱대고 탓하기도 뭣하다. 그러나 이런 선거가 거듭되다 보면 KTX는 KST(Korea Slow Train)가 되지 않겠는가.
▶KTX 세종역 신설은 선거때마다 단골 공약인 모양이다. 이미 정부의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한 사안이다. 이웃 청주시에서는 '세종역 신설 저지' 공약도 있다고 한다. 기존 오송역이 죽어 지역갈등만 일으킬 것이란 우려에서다. 전주에서는 KTX 혁신도시역 신설이, 충남 논산에서는 KTX 훈련소역 신설이 공약이다. 대구의 한 구청장 후보는 KTX 서대구역사 추진을 내세웠다. 이미 동대구역이 있어 "기초단체장에겐 과한 공약"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는 '장성역 KTX 정차' 공약을 너무 우려 먹는다고 시끄럽다. 이미 김천·구미역을 이용하고 있는 구미에서도 KTX 역 신설이 공약이다.
▶과거 교통부 기자실에는 오래 전 선배 기자들의 전설같은 무용담이 떠돌았다. 70년대 초 한 기자는 출입처 장악력이 워낙 뛰어났다. 청사에 불이 나자 장·차관보다 먼저 보고 받고서는 현장에 나타났다든가. 어느 해 명절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갓 운행을 시작한 새마을호 열차를 자기 고향의 간이역에 세운 것이다. 역에는 이미 마을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그나저나 인천이 큰 일이다. 시늉이나마 있던 KTX 검암역도 날아가게 됐으니 말이다. 인천공항 KTX는 평창올림픽이 끝나고서는 3월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열차 정비 등이 핑계였지만 운행 폐지로 가는 수순 아니냐는 분석이다. 3000억원을 들인 인천공항 KTX가 겨우 한시적 올림픽용이었다는 말인가. 이번에 출마한 인천 후보들은 KTX 검암역 되살리기부터 입장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