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북풍(北風)은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순 우리말은 높바람 또는 된바람 쯤 된다. 방향을 일컫기보다 매섭게 부는 바람이란 건데,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러니 그리 쓴 모양이다. 하나, 북풍은 오래 전 자연현상을 일컫는 낱말 기능을 잃었다. 대신 어둡고 음험한 정치사회적 낱말이 돼버렸다. '공포는 충성을 보장 한다'는 속설처럼, 북풍은 어둔 기운으로 눈과 귀를 가리는 주술(呪術)이었다. 북풍 불면 한반도 남쪽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기실 북풍은 북으로부터 온 게 아니다. 소재를 북에서 얻었을 뿐 기획, 제조 및 공급처는 남쪽. 북의 도발위협을 비틀고 부풀려 권력이든 돈이든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려는 집단의 공작일 뿐이었다. 공작은 음험한 기운으로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되 감히 맞서기 어려웠다. '도발위협'은 한반도의 숙명인지라 토 달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러니 북풍은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쳤다. 평화와 관계 없는 평화의 댐이 그랬고,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과 절묘한 타이밍의 간첩 검거 소식 등 유형은 다양하고 사례는 수두룩하다. 심지어 휴전선에서 총 좀 쏴달라고 북측에 요구한 '총풍사건'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공작이 도를 더해가자 북풍은 역풍이 되기도 했다. 그게 뭔지 비록 말하지 않았을 뿐,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덩달아 북풍은 약발을 잃어 갔고, 머잖아 자연현상을 일컫는 본디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해볼 만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북풍이 최근 유령처럼 떠돈다. 퇴장하는 북풍을 불러낸 것은 자칭 논객(?)이나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신북풍'이니 '다른 뜻의 북풍' 따위 조잡한 조어(造語)로 잊혀가는 북풍을 되살리고 있다. 정권 주변 인사들의 성추문, 지지부진한 민생 정책,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는 게 '신북풍' 현상이라 풀어댄다.
겨우 몇 달 새 한반도에 불어 닥친 초대형 평화의 바람이 정권의 실책을 가려준다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걸 가려준 평화의 바람을 어떤 형식으로든 북풍과 엮는 건 어색하다. 북풍은 매서운 '된바람'이지만 지금 한반도에 부는 바람은 부드럽고 훈훈한 바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