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무상'과 '공짜'는 요술 방망이다. 무늬만 무상이며 내가 낸 세금인 줄 뻔히 안다. 그래도 인간의 원초적 공짜 정서를 파고든다. '65세 이상 버스비 무료'라는 공약에 '몇년이나 남았나' 꼽아보는 게 보통사람이다.
지금의 여당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기대 이상 선전했다. 당시 민주당은 시·도지사에서 3대 12로 한나라당에 뒤져 있었다. 이를 7대 6으로 뒤집었다.
이제는 선거마다 전가의 보도가 돼 있는 '무상'의 위력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다. 영유아 무상 보육, 기초노령연금 확대, 저소득층 지원 강화까지 무상 시리즈였다.

민주당은 이를 '보편 복지'라고 했다. 반대측은 '포퓰리즘이자 무차별 복지'라고 맞섰다. "이건희 회장의 손주들까지 세금으로 공짜 밥을 먹여야 하나"였다. 당시 '무상'의 광풍은 필마단기로 대들던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낙마시켰다.

그 이후 5차례의 선거를 치렀다. 이제 '무상'병은 '묻지마'가 됐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왔다. 보다 정교해지고 전방위로 도졌다. 출마를 생각하는이라면 '어디 좋은 무상 아이디어가 없나' 머리를 싸맨다.
재원대책 같은 소리 하면 이미 촌사람 취급이다. 보다 더 기발하고, 보다 더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무상'은 없을까. 이에 대한 무한 경쟁의 선거다.

여도 야도 없다. 좌도 우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파 후보들이 한 술 더 뜨는 단계까지 왔다. 무상급식은 유치원까지 내려갔고 급식 지원 단가를 올리겠다고 한다.
장군에 멍군식이다. 전국의 좌파 교육감 후보 15명이 '친환경 고교 무상 급식'을 공동으로 발표하자 전국의 우파 후보들도 같은 내용의 공약을 내걸었다.

인천·경기에서 1756명이, 전국에서 9315명이 이번 선거에 나섰다. 이 많은 후보들이 밤을 새워 머리를 짜내다 보니 의표를 찌르는 '무상'들도 쏟아진다. 그냥 무상급식은 진부하다. '친환경 무상급식', '무상 석식'까지 나왔다. 급기야 경기도에서는 TV 프로처럼 '삼시세끼' 제공 공약까지 나왔다.
전라도 한 군수 후보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내세웠다. 훗날 그 동네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남의 한 고장에서는 '초·중·고 완전 무상교육'도 등장했다.

'무상 교과서', '무상 교복', '등하교 버스비 지원' 같은 세심한 배려도 보인다. 여학생에게는 생리대를, 어린 아이들에게는 기저귀를 나눠 주겠다는 공약도 있다. 출산을 대비해 미리 기저귀를 사놓은 산모는 도로 무르러 가야 할 참이다. 참 바보들이다. '무상 담배', '무상 술'만 해도 50% 득표는 따놓을 텐데.
그런데 참으로 아쉽다. 그 흔한 무상에도 불구, '무상 청년 일자리' 공약은 왜 안보이나. 딱 한군데 비슷한 게 나온 모양이다. 충청도 어느 도의원 후보다. 특성화고 학생들을 LG화학·녹십자·유한양행 등 지역 대기업에 우선 취업시키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 기업들에는 한번 물어보지도 않은 공약이라고 한다.

꼭 무상 일자리가 아니라도 좋다. 절반만 무상이라 해도 어딘가. 무늬만 말고, 진짜 일자리 말이다. 그 일자리는 어디서 나오나. 바로 일판에서 나온다. 기업들이 돈을 퍼대며 일판을 벌이게 하면 된다. 카지노든 뭐든 가릴 것 없다. 불쌍한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는 그런 후보 어디 없나.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고 했던가. 우리가 좋아하는 '무상'이 바로 그 외상 소다. 모두가 외상 소를 잡아먹겠다고 혈안이다. 이대로 가면, 그 외상 소는 누가 키우려나.